[박정현 칼럼] 24시간 당신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면
[박정현 칼럼] 24시간 당신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면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2.20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과 말들이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1998년 개봉한 <트루먼쇼>는 한 사람의 일생이 텔레비전 쇼로 생중계되는 설정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코믹한 요소도 많았지만 모든 것이 공개되는 트루먼의 삶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지난 11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선생님을 지켜주세요, 불법녹취로 교권이 추락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한 학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전교생이 100명 정도인 작은 학교로 한 학급의 학생이 15명으로 6학년까지 함께 진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한 학부모가 3학년인 아이에게 녹음기를 켜둔 채 등교시켜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아 악성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었다.

올해에만 담임교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고, 다른 아이들도 민원인의 아이가 불법녹취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1명이나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원을 제기한 아이에게 불미스러운 언행을 했다는 점이 있다면 그 부분도 책임 있는 사과와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녹음기를 켜두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것(제1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법 제14조에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녹취를 하는 것은 불법 행위이며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에서 한 일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불법을 저질렀고,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학교도 행정기관이기에 제기되는 민원에 대해서는 절차에 맞춰서 답변을 해야 한다. 민원 또한 공식적인 행정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에 제기되는 민원은 상식과 법률을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비행을 덮기 위해 피해자인 학생을 거꾸로 가해자이며, 평소 행동이 좋지 않은 것처럼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사례도 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은 채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신고자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학교는 무조건 답변을 해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가방을 갖고 등교하지 않는다고 방송국에 제보하여 취재를 온다는 민원이 제기된 경우도 있다. 이밖에도 동네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왜 조치를 하지 않느냐는 폭언에 가까운 민원을 퍼붓는 일도 빈번하다.

정작 교육청에서는 학생 인권을 최우선으로 내세워 학교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규칙 자체까지 바꾸라고 강요하는 마당에 학교는 난처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학교는 구성원 모두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며, 지역 안에서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이웃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민원이 귀찮거나 불쾌한 것이 결코 아니다. 부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민원이 접수되고 처리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적법하고 신속한 답변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민원은 교사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만드는 독(毒)이 된다.

악성 민원에 대한 여과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무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수립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