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왜 교사는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한희정 칼럼] 왜 교사는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12.1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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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사회현안교육을 위한 원칙 합의 토론회 참석 후기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대표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곧 방학이다. 곧 방학이라 함은 교사들도 학생들도 지칠 대로 지쳐 이제나 저제나 방학을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이다. 교사들은 학년 마무리 작업과 새 학년도 교육계획 수립으로 여념이 없을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 교원 100여 명이 모여 3시간 동안 열띤 토론회를 열었다. 지역청별, 학교별 인원을 할당해 주지도 않았는데, 공문을 보고 온라인으로(공문 보고가 아닌) 신청하고, 자발적으로 참석한 교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등록을 하고 토론장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기자들 때문에 일단 놀랐다. 6~10명씩 둘러앉아 원탁토론을 하는 동안에도 기자들은 원탁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오는 의견들을 받아 적기 바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토론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제2 인헌고 사태 예방을 위해...”, “인헌고 사태 계기...”, “인헌고 사건에 놀란 서울시교육청...”, “인헌고 정치편향 논란에...”와 같은 기사에 동원되기 위해 참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인헌고 사건”은 정치적으로 악용된 하나의 극단적 사례일 뿐, 2019년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일상적인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학부모에 의한 불법녹취의 가능성,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 의한 녹취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업을 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대한민국 교사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을 정도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부모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교사가 하는 말을 빠짐없이 받아 적어 오라고 했다는 말에 경악했는데, 요즘은 초소형 녹음기를 아이의 목에 목걸이처럼 걸어서 보낸다고 한다. 바로 옆 반의 동료교사가, 선후배 교사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교사들은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교사가 잘 하면 된다. 교사가 조심하면 된다. 적어도 교사라면 의식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불법녹취라는 행위가 꼬투리를 잡기 위한 행위라는 것에서 발생한다. 어떻게든 문제를 만들기 위한 증거 수집이기 때문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교사들의 의식을 옭죄어오고 있다. 교사들이 느끼는 이런 공포와 수치심을 교육당국은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정말 묻고 싶다.

토론회에 참석한 교사 중 한 명은 4학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자기 앞에 와서 “문재인 타도! 문재인 타도!”를 보란 듯이 외친다고 한다. 그럼 교사는 못들은 척, 못본 척하며 딴 일을 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 중 한 명은 부모님과 함께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나 싶어 아무런 대응도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한 교사는 1학기에 불법녹취의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부모가 6학년 학생에게 녹음을 하라고 시킨 것이다. 녹취를 풀어도 크게 문제될만한 내용이 없자 다음과 같은 대화 내용을 문제 삼으며 교사가 아이에게 강압을 했다고 학교장에게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성적 잘 받고 싶어서요.”

“성적을 잘 받으면 뭐가 좋은데?”

“좋은 대학가는 거요.”

“좋은 대학가면 어떤 게 좋아?”

“좋은 직업을 얻어요.”

또 한 교사는 6학년 담임을 할 때 도덕 교과시간이 끝날 때마다 반 아이들의 원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덕 전담교사가 “무상급식은 쓸데없이 세금 낭비하는 거다. 너희가 거지도 아닌데 왜 공짜로 밥을 먹냐!” 등의 이야기를 하는 걸 참을 수 없으니 도덕 시간에 담임 교사가 수업을 해주면 안되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교무부장이라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토론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진보성향 교원단체...” 혹은 “전교조 교사...”, “진보단체만 모아놓고...”, “교총 거절..”이라는 기사 제목이 무색하게 매우 수세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무엇보다 중립성을 강조했고 인류공영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웠다. 교사들의 교육권이나 수업권은 사회현안교육원칙으로 합의되지 못했다.

둑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강압금지의 원칙, 논쟁성 재현의 원칙, 학생 이해 상관성의 원칙이다. “강압 금지”와 “중립성”은 같은가, 다른가? 왜 토론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강압 금지”보다 “중립성”이라는 낱말을 선택하였을까? 교사가 되는 순간부터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세뇌 받아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중립성이라는 “방어선”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교육기본법 제2조에는 학교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에 두었지만 교사는 민주시민이 아니다. 정치 입장을 집단화해서 표출할 수도 없고, 정당 가입과 정당 활동도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선거 운동은 물론 정치 후원도 금지되어 있고, 선거 출마 금지로 선거 90일 전 사직을 해야 한다. 정치적 의견 표명은 학교와 교실 뿐 아니라 SNS, 공론장에서도 금지되어 있으며, 근무시간 뿐 아니라 근무 외 시간에도 금지되어 있다. 정치적 금치산자인 교사들에게 사회현안 교육이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며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되 그 결정은 학생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 땐?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교사들의 행태는 단지 사회현안교육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생활과 교육활동 곳곳에 베어들고 있다. 급식 지도 뭘 그렇게 열심히 지도해, 그래봐야 학부모 민원만 받는데. 숙제 하든 말든 뭘 검사해, 숙제 없는 학교를 만들라는데. 구구단 못외운다고 뭘 남아서 가르쳐, 그래봐야 좋은 소리 못듣는데. 사회현안교육 뭐 하러 해, 직을 걸고 도박하는 것도 아니고.

그 다음은 무엇일까 진지하게 다시 물어보자. 그 되물음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사들은 왜 중립성의 노예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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