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칼럼] "입시 백화점, 엄청 다양한 상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박정현 칼럼] "입시 백화점, 엄청 다양한 상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2.01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학교 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교사

영화 <돈>에서 주인공 류준열이 증권가의 검은 손인 유지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끊임없이 장소를 변경한다. “장소를 바꿉니다. 건너편 건물 옥상으로 오십시오.” 비밀스럽게 만나는 것도 목적이지만 상대를 혼란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번 입시 개편안을 접하고 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다양하게 차려진 이번 입시 정책은 ‘혼란’ 그 자체이다.

교육부가 지난 11월 28일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르면 서울 소재 16개 대학으로 2023년도까지 수능 위주 전형을 40% 이상으로 유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현재 고2가 대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엔 정시 비율이 23%이다. 고1은 30% 이상, 중3은 40%이상으로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현행 4개 문항 5,000자인 자소서는 중2 단계에서 폐지된다.

교사추천서, 자율동아리, 수상 경력, 독서활동 또한 변동된다. 고2부터 중2까지 입시 비중이 전부 다른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정책에 대해 학생, 학부모는 물론 보수와 진보 단체 모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단체들은 정시의 확대가 학교 현장이 황폐화될 것이라 지적하고 있고, 일부 학부모 단체는 정시 확대 비율이 지나치게 적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수 단체는 교육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작년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대입 제도에 대한 방안을 결정짓기 위해 교육부는 야심차게(?) 정책숙려제를 진행하였다. 전체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도 많았지만 민주적 토로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안이 마련되었다.

생활기록부의 기재 항목은 단순히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역사임을 강조했고 공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많은 고민과 논의의 노력이 무색하게, 다채롭기 그지없는 대입 정책이 학년별로 다르게 만들어졌다.

고등학교 현장은 고교 학점제가 가장 큰 화두이다. 고교 학점제의 성공적인 안착은 내실 있는 학교 내에서의 운영과 수능의 절대평가화가 전제되어야 함에 있다.

그런데 정시가 확대되면서 고교학점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각 정책의 엇박자뿐만 아니라 수능에 논술형을 도입한다는 안까지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 복잡함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대입 개편 정책 발표 직후, 많은 분들로부터 우리 아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솔직하게 우리 아이는 대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입시 정책으로 학교 현장이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상황 자체에 있다. 입시와 무관하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학교 현장까지 입시 혼란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입시는 선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물론 많은 고심 끝에 결정을 했겠지만 현장에서의 극심한 혼란은 어찌 할 것인가?

중고등학교에서 수년 간 학교 현장에서 입시지도를 하고 있지만 도무지 헷갈려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조변석개하는 상황에서 지금 결정한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입시 정책’은 변동이 적어야 한다. 혼란이 적은 상황에서 오랜 시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프랑스의 바깔로레아가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힘은 지속성과 신뢰에 있다.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