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10년도 안된 끔찍한 사건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한희정 칼럼] 10년도 안된 끔찍한 사건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1.29 12: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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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차장 강제 개방법’ 철회를 환영하며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대표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2010년 서울의 모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학교자율휴업일에 방과후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왔다가 운동장에서 납치되어 가해자의 집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제2의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며, 학교 공간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당시 학교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학교라는 명분으로 휴일이나 방과후에 학교를 개방하고 있었다. 1999년부터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규칙'을 통해 "각급 학교는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주민이 학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고 한 것이다. 수업 시간에 지장이 없는 범위, 즉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학교를 개방하고 있던 대다수의 학교 중 한 곳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

그 후 서울시는 외부인 출입 통제 등을 목적으로 ‘학교 보안관’을 초등학교에 2인씩 배치하고(2011년), ‘서울특별시립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2012년)를 통해 “학생안전과 재산관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학교장이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학교 개방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2012년에는 계성초에서, 2018년에는 방배초에서 학생 인질극이 벌어졌다. 계성초 사건 이후 교육부는 ‘학교 출입증 및 출입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 2014년부터 일반인이 초등학교를 방문할 때는 이름과 생년월일, 방문목적 등을 일일방문증 관리대장에 기재토록 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출입 통제가 거의 없었던 학교에 들어와서 흉기 난동을 부렸던 계성초 사건과 달리 방배초 사건은 출입 통제가 있었음에도 졸업생 민원인을 가장하고 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범행 의도를 갖고 학교에 들어와 인질극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사건 이후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도 출입기록을 하고 방문증을 패용하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언제나 빈틈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학교 출입을 원하는 경우 목적을 밝히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지자체장이 국공립학교까지 주차장을 확대 지정할 수 있도록 '주차장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 법사위까지 통과, 지난 11월 19일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교육부의 우려 표명과 여당의 중재로 보류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를 모두 통과하도록 교육부는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국토교통부는 교육부에 ‘의견조회’ 절차조차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계는 분노했고, 시도교육감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교원단체가 반대성명을 냈다. 다행히도 11월 28일, 주차장 개방 대상에서 학교는 제외되었다. 정치권의 이런 결정을 환영하지만 이런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주민편의를 위해 학생의 안전을 패싱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주차장과 운동장을 주차난 해소를 위해 지역주민에게 주차장으로 개방하도록 결정할 권한은 학교장에게 있어야 하는가, 지자체장에게 있어야 하는가! 서울 시내 600여 개의 학교 중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학생들의 등하굣길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학교는 몇 개나 되는가! 운동장이나 주차장에서 학교 건물로 외부인 진입이 불가하도록 분리되어 있는 학교는 몇 개나 되는가!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들은 학교의 안전을 위해 이런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하지 않는가!

2004년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는 다세대 밀집 지역으로 주차장이 부족했다. 그래서 학교 주차장을 저녁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주민에게 개방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학생들 등교시간 이전에 차를 빼는 것이 원칙이었음에도 오전 8시가 넘어 차를 빼거나 저녁 6시 전부터 진입하는 차,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내내 주차를 해놓는 차로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 연락처도 남겨놓지 않아 차를 빼라고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통학로와 차량 출입로가 분리되어 있지도 않아 등굣길은 늘 위험했고, 교사들이 돌아가며 학부모와 함께 안전지도를 해야 했다. 그 위험을 왜 학교가 감당해야 했던 것인지, 지금도 의문이다.

지난 20년간 학교 시설을 주민에게 개방한 이후 학교 현장 교사들이 목도한 현실은 이런 것이다. 우리학교 교문 바로 앞에 있는 벽에는 “학교물품, 손대지 말 것”이라고 써 있는 벽시계가 걸려있다. 체육수업에 시간 확인을 위해 걸어둔 시계가 자꾸 없어져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이다. 우리학교 화단에 놓여 있는 상자텃밭에는 “학생 교육용입니다. 학생들도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주말만 지나면 상추, 깻잎, 토마토, 고추 등을 누군가가 알뜰하게 뜯어가니 만들어낸 고육지책이다. 일요일에 운동장을 빌려준 다음에는 담배꽁초와 병뚜껑, 깨진 유리조각이 굴러다니는 것을 지난 20년간 수도 없이 봤다.

학교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며 공공시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공간이지 주민의 편의와 주차난 해소, 생활체육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다.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서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학생의 안녕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학교는 교육의 논리보다는 정치의 논리에 휘둘려 시설 개방을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자괴감이 몰려온다. 우리는 지금 늘 위험이 상존하는 복잡한 현실속에 살고 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학교가 비어 있으니 주민편의를 위해 사용하면 좋겠다는 근시안적인 접근은 주차장법 개정 논란을 끝으로 이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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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wlgka 2019-11-30 21:48:11
구구절절 동의하며, 최근 서울시의회의 움직임에도 우려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병길 2019-11-29 16:11:05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