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대통령 한마디에 흔들리는 입시정책은 과연 공정한가
[한희정 칼럼] 대통령 한마디에 흔들리는 입시정책은 과연 공정한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0.24 11: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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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대표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이미 탄핵 심판을 받은 박근혜 전대통령이 2014년 “컴퓨터적 사고를 기본 소양으로” 갖출 수 있도록 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한겨레신문은 “아이들 호기심 방치 말고 ‘컴퓨터적 사고’와 연결을”이라는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강조 발언 뒤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컴퓨터적 사고”라는 워딩을 전해 들었을 때 ‘컴퓨터적 사고가 어떤 의미와 맥락을 지닌 개념인지 알고 쓰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시비중 상향이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 지 도대체 알고 하는 발언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바로 전 날 국감장에서 학종 개선 중심의 입시제도 개편을 말한 교육부 장관은 머쓱해졌고, 교육시민단체는 반발했으며, 사교육업체의 주가는 뛰었다.

'정시 30% 룰' 또 뒤집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근간 흔들(서울신문). 문재인 대통령 "대입 정시 비중 상향"… 더 큰 혼란 빠지는 교육계(경인일보). 수능, 외고·자사고, 정시 확대…‘갈지(之)자’ 걷는 문재인 교육(중앙일보). "정시 확대" 대통령 한마디에 찬반 대립…학생·학부모 혼란(TV조선). 文 "정시 비중 상향하겠다"에 교육계 곳곳 '우려'(머니투데이)

이후 쏟아져 나온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다. 이 쯤 되면 누가 갈지자를 걷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며, 불공정의 상징이며, 부의 대물림이라던 언론 보도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일단 환영한다’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싶은 거다. 여기에 기름을 붓듯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정시비율 50%를 들먹거리자 청와대는 해명을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이런 해명은 갈지자에 갈지자를 더해준다.

진화 나선 청와대 "정시 비중 확대 비율 아직 정해진 건 없어" (서울신문). 대통령 '정시 비중 확대' 언급에.. 靑 "비율, 정해진 건 없다" (국민일보). 靑 "정시비중 확대, 비율 정해진 건 없어" (KTV). 靑 "정시비중 확대, 비율 정해진 건 없어..계속 논의할 것" (연합뉴스/MBC/SBS). 청와대 "정시 확대 비율 정해진 것 없다" 진화(프레시안)

대통령의 발언이 갖는 무게를 생각할 때 이런 해명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 정해진 바가 없는데 정시 비중을 확대한다는 말을 한 것인가? 이런 의문과 함께 정부의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당장 그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현재 중3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문제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사고와 부유층 집중 지역의 일반고, 전국단위모집 일반고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학교 1,2학년 학생과 학부모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혼란도 상위 30%의 눈치 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위 70%에게는 정시든, 수시든 기회가 없긴 마찬가지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2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학종이 과도하게 높은 수도권 일부 대학에 대해서는 그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 쪽으로 잡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쯤 되면 또다른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아, 그들의 목표물은 수도권 소재 학종 비율이 높은 소위 대학 서열화의 상층에 있는 대학이구나! 모든 대학에 정시 비율을 높여서 그들의 말한 공정성을 보편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만 공정한 룰을 상위권 몇 몇 대학에만 강제하겠다는 것 아닌가?’ 학종 비율이 높은 대학은 검색만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기계적 공정이란 인간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수량화해서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든 정시든 그 어떤 제도든 결국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지닌 계층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그 외의 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의 확대, 출발선 평등을 위한 각고의 노력과 대국민 설득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공정성 논란은 오히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흔들려 예측 불가능한 불공정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에서 진짜 혼란을 겪는 당사자는 현장 교사들이다. 물론 모든 교사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고, 새로운 수업과 학교를 꿈꾸며 현 정부의 교육공약을 지지했던 그 교사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 ‘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뭐 좋다고 토론 수업하고 프로젝트 하고 골머리를 앓으면서 힘들게 해. 대충 수업해.’라는 그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사고나 특목고, 국제학교 같은 특권학교를 폐지하겠다, 혁신교육을 확대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는 거꾸로 가는 대통령의 지난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이제 기대를 접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다. 실천교육교사모임 페이스북 광장에 한 일반고의 선생님께서 이런 글을 올려주셨다. 입시 중심 교육이 최고라고 추앙받는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교육을 꿈꾸며 실천하는 교사들은 이렇게 서로 토닥이며 오늘 하루를 견디고 있다.

“정시확대와 관련해서. 초등선생님들께서 더 뜨겁게 반대해주시고. 000 선생님 말씀대로 ‘시일야방성대곡’처럼 아파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되려. 고등학교현장에서는 정시를 더 편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편하다는 게. 옳다거니 공정하다거나 교육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도 엄청 날이 서는 작업이구요. 대학입학실적이 교육의 전부인 양 여기는 전과 다름없는 일상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마음으로 교육이 무엇이냐에 대해 마음을 모아주시니. 그게 희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곱게 키워 올려주신 학생들의 잠재력을 계속 키워주고 한사람의 주체적 성숙자로 설 수 있도록 중등에서도. ‘교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풀이 훈련 말고요.

마음이 모아져서 감사하다고. 그냥 고등학교 근무하면서 날마다 힘이 빠져 있는 동료지만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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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배터리 2019-10-24 17:18:44
수시 비중이 70%가 넘는 2019년 SKY 대학 신입생의 46%는 강남 출신. 강북과 비교하면 21배 많음. 무슨 근거로 정시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고 하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