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법령에 따라 교육해야 하는 교사는 왜 법이 두려운가!
[한희정 칼럼] 법령에 따라 교육해야 하는 교사는 왜 법이 두려운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0.08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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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대표

-“학교교육에 영향을 끼치는 법령 및 입법 실태 국제 비교” 토론회 후기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지난 9월 30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여영국 국회의원실과 대한교육법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학교교육에 영향을 끼치는 법령과 입법 실태를 한국, 미국, 독일, 일본의 사례를 들어 비교하고 토론해보는 자리였다.

여영국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아이들의 교과부터, 안전, 급식, 학교폭력 문제까지 정말 학교 생활과 관련한 거의 모든 사항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생활과 관련한 내용들을 법령으로써 세세히 규정하면 그만큼 해당영역의 경직성이 커지고, 행정절차가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비단 교사와 교육계 종사자들에게 과도한 법령해석 절차와 행정업무를 요구하게 될 뿐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교육법령이 따라가지 못하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불편함을 겪게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선 주기적으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법령을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오늘 토론회가 적확히 그 역할을 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 지금 학교는 온갖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 시간 때문에 거짓 아닌 거짓 교육을 행하고 있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학교보건법>,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 <식생활교육지원법>, <인성교육진흥법>, <진로교육법>, <장애인복지법>,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다문화 가족 지원법>, <통일교육지원법>, <청소년활동 진흥법>, <학교체육진흥법>, <과학․수학․정보교육진흥법>, <특수교육법>, <장애인 복지법>, <다문화가족지원법>, <학교도서관진흥법>, <문화예술교육진흥법>,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국가정보화기본법> 등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겠지만 이 모든 법률이 학교에서의 교육시간을 과도하게 강제하고 있다. 학교가 교과를 가르치는 곳인지, 온갖 법률에 따른 특별 교육을 하는 곳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교육과정상 교육시간 편성이 의무화된 시간은 교육부와 교육청, 조례 등이 요구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계산하면 초등학교 1096시간으로 창의적체험활동시간의 161%에 이르고, 중학교 637시간으로 208%, 고등학교 637시간으로 156%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교과 수업과 연계해서 운영 할 수도 있지만 전국의 모든 교육과정 부장 교사들은 이 수많은 시간을 어느 교과에 어떻게 몇 시간을 끼워넣어야 할까 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없어지는 법은 없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법률에 지자체의 조례까지 추가되면서 적폐처럼 쌓이고 쌓여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이 법도 중요하고 저 법도 중요하니 모두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사례를 발표한 염철현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낙오학생방지법(NCLB)’이나 ‘모든 학생의 성공법(ESEA)’ 같은 연방교육법이 교부금을 빌미로 주정부의 교육에 부정적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점과 차터스쿨이나 주 정부 차원의 학생 평가 정책 역시 학교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인성교육과 안전교육 부분에서만 연 1-2회 정도 필수 교육으로 지정하고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년에 강제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면서 유연하게 정규교육과정과 통합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독일의 사례를 발표한 박신욱 경상대 교수는 학교법을 통해 학교의 운영과 관련된 학생, 교사, 학부모, 관리자 등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화하고 있지만 교사의 자율성과 그에 따른 강력한 책임을 부여하며 교사들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법률은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홀로코스트 교육, 디지털 교육, 성교육, 학교폭력, 반원전교육 같은 범교과 차원의 교육을 시행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법률, 시행령, 조례로 결정하고 모든 학교에 강제하고 시행 여부를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내용에 대한 연방정부의 합의에 대해 주 정부가 수용하고 교육과정을 수립하여 학교에 제공하고, 최종적으로 교사들이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김용 교원대 교수는 일본의 마루마루교육이 범교과 학습과 유사하며, 일본에서도 이런 범교과 학습이 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는 우리나라는 법률, 시행령, 지침, 조례를 통해 법적 제도적 근거를 갖추는 반면, 일본의 경우는 국가 수준에서는 진흥법을 통해 교육을 지원하거나 10년 주기로 개정되는 “학습지도요령”, 즉 우리나라로 하면 국가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특이한 점은 여러 진흥법이 우리나라처럼 학교에 의무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분야를 진흥하기 위해 학교에 어떤 지원을 하고 경비를 마련할 것인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수준에서는 지역의 교육위원회가 교육 중점이나 교육 시책을 시행하도록 유도할 뿐 우리나라처럼 조례나 규칙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밝힌 신동하(청솔중 교사) 교사는 학교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법령 중 비슷한 내용이 중복 반영된 부분들에 대한 강력한 정비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범교과 주제를 관련 정규 교과 내로 포괄하여 별도의 시수 편성이나 보고에서 배제되도록 할 것, 특별 계기 교육이나 안전교육처럼 주기적으로 체득해야 할 것들을 구분하고, 학생 발달에 맞게 교육내용을 편성하여 현재처럼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교육법학자들이 동의하고 이런 토론회를 주최하였듯이, 현장 교사들도, 교육청도 모두 이런 문제제기에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회다. 학교를 옭죄는 법률에 대한 개정안이 만들어지고 합의를 하고 통과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실행가능성은 현 정부와 교육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법률 개정을 기다리지 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바꿔 학교현장에 숨통을 틔워주길 바란다. 의무적인 강제 교육시간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대통령령인 시행령과 교육부의 시행규칙 등에서 너무나 세세하게 명시되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법령에 따라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들은 왜 법이 두려운가! 무언가 새로운 법이 생길 때마다 학교에 떨어진 업무 폭탄들 먼저 걱정해야 하는가! 학교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해야만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제발 할 수 있는 것과 꼭 해야만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율과 책임을 함께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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