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학력 격차가 만들어내는 학력 저하, 답은 어디에?
[한희정 칼럼] 학력 격차가 만들어내는 학력 저하, 답은 어디에?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9.30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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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대표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서울시교육청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 유감(2)

추분도 지났고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세상은 뜨겁기만 하다. 그 뜨거움의 중심에는 학벌을 통한 권력의 대물림 현상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학교 현장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용어는 전혀 가슴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 위에 있는 그들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에는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내게 너무 가까이 있고,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뭔지 몰라 답답해하는 동료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5일 서울시교육청은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는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을 발표했다. 정말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공허한 말은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는 칼럼을 이미 쓰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서울시교육청이 “학생과 교사, 학부모, 교육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 모니터링, 관련 기관(단체)의 자문을 통해 학생 중심의 완성도 높은” 기초학력 보장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니 우려되는 문제 몇 가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째, 단계적인 진단시스템 운영으로 다층적․전문적 진단을 하겠다는 것은 문제 자체를 잘못 진단하고 있다고 본다. 학교에서 진단하고, 지역학습도움센터에서 또 진단하고, 서울학습도움센터에서 진단하면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올까? 3중의 진단시스템이 없어서 기초학력이 미달된 것인가? 차라리 학교에서 진단한 결과에 대해서 지원을 요청하면 ‘선택적’이 아니라 ‘모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기 바란다.

둘째,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2월)을 통해서 학생의 성장 이력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이미 모든 교사들이 성장 이력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 두려워 먼저 3월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보고 도저히 파악이 안 되거나 힘들면 이전 학년도의 담임을 찾아간다. ‘나는 이렇게 봤는데 작년에는 도대체 어땠는지 궁금하고, 나의 진단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2월에 출석부를 보고 전 담임과 공유를 한다?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많을 것이다.

셋째,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는데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표준화된 시험이 필요하냐, 각 교실에서의 수행이 중요하냐는 교육계의 지지부진한 핑퐁 게임과 같다. 표준화 시험을 시행하는 교육당국은 언제나 그 진의가 ‘비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결과는 언제나 ‘비교’에 활용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공개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이 자료제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교육불평등 지수가 세계적으로 매우 낮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지역별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다.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른 학력 격차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지역별 불평등과 집값의 격차를 키우는 데 활용되고 그 악순환은 지속 될 것이다.

넷째, 기초학력 부진을 조기에 예방하기 위해 초2 집중학년제를 운영하겠다고 하는데 기초학력 부진을 예방하기에 초등학교 2학년은 늦다는 것이다. 만 3세의 언어능력이 초등학교에서의 학업 성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인데도 엄청난 어휘력과 논리적 사고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한글을 읽지 못하고 한자리수의 덧셈과 뺄셈도 손가락으로 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이 2학년에 가면 얼마나 더 큰 어려움을 겪을까 싶어서 별도의 과제를 내주고,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 틈틈이 개별지도를 하고, 부모 동의를 얻어 방과후에 주 2회씩 개별지도를 하고 있지만 이만큼 하면 교과 진도는 저만큼 달아나 있으니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벅차다. 그러니 조기 예방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다섯째, 부족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다. 초2 유레카 프로젝트는 심층진단을 통해서 70회기 정도의 맞춤학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원 대상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66명(중1은 385명)이다. 2019년에 41명을 지원했고, 2020년에는 66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결국 예산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초2 더불어 교사제 확대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2019년 16명에서 2020년 30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진짜 확대가 맞는 것인지 궁금하다. 지역학습도움센터는 계획안 곳곳에 등장하는데 2020년에 단 한 곳을 구축하겠다니 이 계획안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여섯째, 단위학교별 다중지원팀은 결국 문서만 양산해 낼 것이다. 담임교사, 특수교사, 보건교사, 교육복지 담당자, 전문상담교사 등을 중심으로 다중지원팀을 꾸려서 학생을 선정하고,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학생을 지원․관리하고, 학부모 참여 협의체를 만들라는 것이다. 문서만 양산하고 형식적인 운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이 팀에 참여해야 하는 교사들이 모두 각자 해야 할 또 다른 많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교사가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담임교사들의 지원 이력 문서 정리 업무만 가중될 것이고, 학부모 참여 협의체는 제대로 운영도 되지 않을 것이다. 기초학력부진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에 나와 공개적인 회의에 참여할 의향이 과연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일곱째, 이 모든 장밋빛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학교는 학부모의 동의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부모 연수를 통해 가정의 책무성을 강화하겠다는 항목이 하나 나오는데 학부모 연수가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학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아서 학생이 기초학력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아 기본학력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음 학기 학습지원 필수 대상자로 선정하여 기초학력 프로그램을 지원”하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다음 학기에도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여덟째, 기초학력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정말 힘든 부분은 ‘제대로’ 안 가르쳐서 학생들의 학력이 낮다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이 계획안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진짜 교사들이 느끼는 문제는 가르쳐도 안되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이다. ‘제대로’의 의미를 정리하자면 수업시간에 충실하게 가르치고, 잘 안되는 경우 별도로 지도하고, 개인적인 학습과제를 부과한다는 것까지이다. 그렇게 해도 우리 반에는 언제나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 있었고, 올해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계획안을 수립한 담당자들이 대부분 현장 교사 경험이 있을 텐데 필자와는 다른 세계의 학교에서 근무하신 분들인가 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을 학생들의 삶에서 분리시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아이들의 배움은 삶의 터전과 분리될 수 있는가? 못푸는 문제만 보정하는 것이 맞춤형 보정인가? 삶의 환경을 바꿔주지 못하는 학습 지원은 얼마나 힘이 있는가? 정서적 지원을 통해 주체적인 대응이 가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발생하는 학력 격차의 근원에는 어떤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인가? 어릴 적부터 ‘부모 찬스’로 상대적 우위에서 출발하는 아이들을 보며 못한다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공허한 말보다 이런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하고자 하는 흔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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