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진단을 못해서 기초학력이 부족한가, 지원이 부족한가!
[한희정 칼럼] 진단을 못해서 기초학력이 부족한가, 지원이 부족한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09.08 22: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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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 유감(1)
글 한희정 서울 실천교육교사모임 대표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엄마가 사라졌다. 매일 밤 늦게 귀가하던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3학년 아이는 홀로 남겨졌다. 집 주변을 배회하다가 이웃주민의 도움으로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엄마가 사라진 이유를 담임은 어떻게 알겠는가! 전화도 안 되고 문자를 넣어도 답도 없다. 이리 저리 수소문을 해서 조부모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엄마의 행방에 대해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조부모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할머니와 무기력한 할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필요한 보호자는 아니었다.

ADHD 약을 복용하던 아이는 극단적인 불안과 우울 증세에 시달리고 있고, 담임교사는 여기저기 도움을 받을 기관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기관도 선뜻 나서지 않고 빙빙 돌리기만 했다. 엄마는 구속 수감 중이고, 아이는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이 절실한 상황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학급에 17명의 학생이 있는데 6명이 심리상담 치료 중이고 그 아이는 그중 한 명이다. 도대체 담임교사에게 어떻게 기초학력책임지도를 강제할 수 있겠는가!

5월 1학년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주민등록등본상 주소나 학교 배정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학교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빠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양육권을 갖고 있는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빼돌렸다고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고, 애를 데리러 학교에 찾아가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권자가 아닌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엄마는 양육권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담임교사에게 하지 않았는데 담임교사가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것인가?

교감을 통해 보안관에게 학교 출입을 잘 단속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속을 졸이는 날들이 지나간다. 엄마가 이 사실을 담임에게 미리 알려줬다면 이렇게 속앓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어두웠던 아이의 얼굴이 학교에 적응하며 조금씩 밝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이런저런 다툼이 있다는 것과 아이가 다시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도록 노력 중이라는 전언이었지만, 그 아이는 바로 다음 날 “선생님, 나 또 전학 갈지도 몰라요”라는 말을 전한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진단인가, 지원인가! 학습 지원인가, 정서적 지원인가!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비밀전학이란다. 더운 날씨에도 목에 스카프를 두른 엄마는 불안했고, 아이는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보기 일쑤였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 웃음이 돌아올 즈음 쉬는 시간이었다. 회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 깨끗한 구두를 신은 채 교실 문에 들어선다. 담임교사는 직감했다. 아이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시라고 하고 교무실에 연락을 한 다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아빠는 따라 나왔고, 아이는 아빠를 보자 뒷걸음질을 쳤다.

경찰이 왔고, 엄마가 왔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다음 날 또 비밀전학을 갔다. 며칠 후 학교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그 아이 앞으로 온 것이었다. 담임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가정폭력 피해자 그룹홈 운영자에게 전했다. 아이와 엄마는 어디서 어떻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꾸릴 것인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학교는 할 수 있는가? 담임교사가 할 수 있는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 가장 처절한 자리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들어온다. 경제적 궁핍도 궁핍이지만 정서적 궁핍과 물리적 폭력,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있다.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그것을 감내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안타까워하면서 이리저리 해결 방안을 찾아보지만, 그 다음에는 보호자 동의 없이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그런 부모들로부터 폭언이나 욕설을 들으면서 심리적으로 소진되고 황폐화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9월 5일 “모든 학생 끝까지 책임지는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을 발표했다. △ 초2 집중학년제 운영으로 기초학력부진 조기 예방 △ 초3, 중1 모든 학생 기초학력 진단검사 실시 △ 중학교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책임지도제 확대 △ 복합요인으로 인한 학습지원 대상학생 전문적 지원(난독·경계선지능 전담팀 신설) △ 현장밀착형 전문가 지원을 위한 지역별 학습도움센터를 구축하겠단다.

참 좋은 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앞서 예를 든 아이들은 모두 서울의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정말 서울교육청이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정도로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책임지겠다는 말은 교육청이 하면서 그 책임은 “단위학교”와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의문이다.

새롭다고 내놓은 것들이 모두 기존에 하고 있던 것의 재탕이라면 기대할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현장 교사들이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교사들도 힘들다고 아우성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저히 교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저 늪을 어떻게 헤어나야 하는 것일까? 초등학교 2학년 830학급에 50만원씩 지원을 해준다고, 학교마다 담임교사, 보건교사, 특수교사로 된 다중지원팀을 꾸린다고, 복합요인이 있는 아이들을 모두 서울학습도움센터에 보낸다고 해결이 되겠느냐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슴 아픈 것, 아이들의 삶을 돌보는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서울학습도움센터의 학습 상담으로 도움을 받아 향상된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었는가?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집중해서 도움을 주면 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이런 공허한 수식어는 빼기 바란다. “단위학교 책임지도제” 같은 무책임을 강화하는 내용도 빼기 바란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요식행위가 나온다. 학년 말 구제, 다음 학년 초 부진으로 진단, 많이 해 왔던 일 아닌가? 모든 복합적인 요인을 학교와 교사의 책임 강화로 해결하려고 하면 누가 힘들고 어려운 지역에 가서 교사를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 학교는 신규교사들로 채워질 것이다.

제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자. 정치적으로 공허한 말 잔치는 그만 듣고 싶다.

(정책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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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2019-09-17 13:14:25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교사들이 더 많아서 욕먹고 학교에서 해주는건 아무것도 없다는게 초중등 공통된 학부모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