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교사의 전화번호는 공공재인가?
[한희정 칼럼] 교사의 전화번호는 공공재인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7.29 10: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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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의 예산 삭감을 보며 정치기본권을 생각하다.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사모임대표/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지난 5월 14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대표, 학부모단체, 교원단체, 서울시의회와 함께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서울교육공동체 공동 선언’과 ‘서울교원 교육활동 보호 주요 정책’을 발표하였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이런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학교 현장의 어려움에는 무심함이 흐르고, 교사들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게 정당한 것이냐는 단편적 사안에만 집중된 언론보도들이 흘러나왔다. 물론 이 단편적 사안으로 관심을 촉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적 논의를 확대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갈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일 먼저 터져 나온 것은 ‘급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연락하냐’는 일부 학부모들의 불만이었고(필자가 보기에는 과잉 표집된), ‘왜 몇 억이나 되는 세금을 축내냐’는 소시민들의 혈세론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을 생각할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담론이었고, 새로울 게 없는 뻔한 얘기들이었다.

교사들의 반응을 주목한 언론 기사는 찾을 수 없었지만 필자의 모니터링에 근거하면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냥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 번호 공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육청이 학부모에게 알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런 두 다리 건너는 일을 벌려 교사들이 또 욕을 먹게 하느냐’는 것과 또 하나는 ‘도대체 그렇다면 그 업무용 폰을 지급하고 관리하는 것은 누가 맡아서 하게 될 것이냐’는 불만이었다.

일단, 이 문제는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과연 공공재인가, 그래서 새 학년이 되고 담임교사가 바뀌면 교사의 휴대전화번호는 공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사의 휴대전화번호는 공공재도 아니고, 공개해야 할 여타의 법적 의무도 없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또 그만큼 우리의 일상의 시계가 촘촘하고 빠르게 흘러가면서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세대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교사들의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학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시라고 3월 담임교사의 인사편지를 통해 개인 휴대번호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지침도 없었고, 개인정보 보호법 따위도 없었다. 그러나 초연결사회라는 이 스마트폰 시대의 당도는 담임교사가 발표되면, 그 학교에 새 전입교사가 발령이 나면 먼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지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어머, 선생님 남자친구 엄청 잘 생기셨던데.”

“지난 주말에 000에 다녀오셨죠?”

이런 얘기를 학부모로부터 듣게 된 젊은 교사들은 경악했고 교사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갔다.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세대 교사들은 투 넘버를 사용하거나 업무용 폰을 따로 만들어서 들고 다니는 게 현실이 되었다. 물론, 저렇게 관심을 표현한 학부모들의 선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병리현상의 많은 부분은 ‘선의’에서 시작된다.

이뿐 아니다. 젊은 여교사는 시도 때도 없는 전화와 장문의 문자 메시지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수업 중에도 문자를 보내서 바로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거나 전화를 받거나 답문을 보낼 때까지 계속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는 사례의 피해자는 대체로 젊은 여교사였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어떤 경우는 신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교사들은 두 개의 전화를 사용하거나 두 개의 번호를 사용해 왔다.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무리수’라 여기면서 두 배의 통신비용을 그냥 감당해 왔다. 담임교사와 연락할 정말 긴요하고 중요한 사안,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혹시 모를 그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러나 20년 가까이 전화번호를 공개했던 필자의 경험을 보건데 긴요하고 중대한 사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체로 오늘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 지각을 한다, 아파서 결석한다, 체험학습을 신청하려고 한다는 매우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교사 출근시간 8시 40분 이후에 연락해도 되고 아이를 통해 전해도 되는 것들이다. 교사 업무용 전화 지급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정책이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고, 긴요한 경우 연락할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에 드나드는 스쿨폴리스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경찰들도 업무용 폰을 지급받아 사용한다. 하나의 폰을 돌아가면서 사용하는지 업무용 번호로 전화를 해도 비번이라 다른 경찰이 전화를 받는 경우들이 많았고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 번호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대단하다, 교사가 저렇게 응대했으면 불만이 엄청 났을 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경찰이 업무용 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교사들이 업무용 폰을 사용하는 것은 혈세 낭비인가?

서울시교육청이 업무용 폰을 지급하겠다는 발표를 나는 환영했다. 교사의 휴대번호 공개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리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초연결사회 시간의 흐름이 그리 빠르다면 한 다리 건너가는 것도 괜찮다고 봤다. 적극적으로 2학기 시범 사업에 참여할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주로 정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그 일은 누가 하나’라는 자조 섞인 반응을 접하게 되면서는 학교의 업무시스템에 다시 한번 절망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교사들에게 폰을 지급한다고 하면 세금만 나가면 되는 거지, 하겠지만 사실 학교의 업무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일은 누구의 일인가로 첨예하다. 아침에 교사들에게 휴대폰을 지급하고, 퇴근할 때 반납하고, 비품 대장을 만들어 관리하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비품 관리는 학교 일반직(행정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교육’활동과 관계되는 일이라는 이유로 ‘교사’의 일이 되어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CCTV, 아리수(정수기), 컴퓨터, 책걸상, 교과서 등등 학교의 일 중 교육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사정이 그러다보니 정보 담당 교사들은 먼저 일 폭탄이 떨어질까 우려를 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나 반발은 찻잔 속 태풍도 되지 못하고 버려질 운명인 거 같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의 업무용 폰 지급을 위한 추경 예산을 삭감하면서 학부모만의 만족도 조사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고 한다.

시교육청은 우선 올해 2학기 6개월치 예산 3억8,000만원을 추가 경정 예산으로 편성해 서울시의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방학 기간 두 달을 뺀 4개월만 운영해본 뒤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거쳐 결과가 좋으면 지속 여부를 결정하라는 단서 조항을 붙여 예산을 2억5,000만원으로 삭감했다.

단서 조항을 붙인 이유는 일부 학부모들이 방과 후 교사와 연락되지 않으면 불편하게 여겨 업무폰 도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모 대상 만족도 조사만 반영하면 업무폰 사업을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교육청은 교사들의 만족도 조사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의회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사 업무폰’ 4개월 요금제 만들라고? 이통사ㆍ교사들 황당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171534740515?did=DA&dtype=&dtypecode=&prnewsid=

학부모의 만족도는 중요하고, 교사들의 만족도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지난 5월 14일 서울교육공동체선언에 참여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들은 내용도 모르고 사진 찍기 위해 참여한 것인가? 서울시의회는 학부모 표만 구걸하는 집단 아닌가? 절망을 목도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사들은 동네북인가, 하는 자조가 떠돌았는데 요즘에는 교사들은 희화화와 혐오의 대상인가 싶은 자조가 떠돌고 있다. 그런 자조의 밑바닥에는 교사들이 정치기본권이 없어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현실인식”이 꿈틀거리고 있다. 촛불혁명을 이룩한 나라라고 전세계에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최소한의 시민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부끄러운 현실 아닌가?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탄생시킨다고. 물론 모든 도마뱀이 날개를 달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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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스쿨 2019-07-30 17: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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