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탄교사’ 그 후...
[기자수첩] ‘폭탄교사’ 그 후...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6.22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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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2010년 6월 3일. 처음 주민직선으로 치러진 서울시교육감선거에서 곽노현 방송대교수가 당선됐다. 경합을 벌였던 이원희 한국교총회장과 표차는 1.1%. 박빙의 승리다.

이 후보는 줄곧 1위를 달렸다. 교총회장이란 지명도와 탄탄한 조직력은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반면 곽 후보는 일반에게 생소한 인물. 민교협에서 활동한 강한 진보성향의 교수라는 거 외에는 별반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그중 교육계에 정설처럼 퍼진 이 후보의 패인 하나. 그것은 바로 부적격교사 퇴출이다. 승리를 자신하던 이 후보는 개혁 성향의 유권자마저 잡기 위해 선거 막판 공약으로 부적격교사 퇴출을 내걸었다. 4년 임기 동안 부적격교사 10%를 퇴출시키겠다고 호언했다.

그때부터였다. 선거 판세가 요동을 쳤다. 교육계는 이 후보를 격렬히 비난했다. “당신이 뭔데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냐”, “전체 교사들을 매도했다”, “교육감되려고 교사 등에 칼을 꽂았다” 등등 험구가 쏟아졌다.

서울지역 교사들만 흥분한 건 아니었다. 이 후보 거부 정서는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퍼져나갔다. 그가 교육감이 되면 교사 퇴출이 전국적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사 가족들까지 그를 멀리했다. 교사들의 표는 잃더라도 학부모들은 자신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선거가 끝난 뒤 “이원희 싫어서 곽노현 찍었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교사들의 거부 정서는 학부모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 해도 교육감 선거는 일반 시민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종종 교사들에게 누가 적임자인지를 묻곤 했다. 그때마다 “이원희 찍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이후 교육계에서 ‘부적격교사’는 금지된 언어가 됐다.

얼마 전 본지에 ‘폭탄교사 돌리기’라는 칼럼이 실렸다. 역린(?)을 건드린 탓일까. 큰 반향이 일었다.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할 말을 했다. 용기있는 고백이다. 교육현장의 문제를 명쾌하게 짚어냈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물론 “교사를 모독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학교에 이런 사람 꼭 있다. 교육청도 알고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손 대지 못한다. 언제까지 외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입에 담기 힘든 적나라한 제보들도 전해졌다. 수업은 엉망진창, 출퇴근은 제멋대로다. 걸핏하면 신병을 핑계로 학교엘 오지 않는다. 행정업무에서 열외는 이미 오래다. 학부모나 학교관리자들과 마찰이 잦다. 그럴때면 고소·고발로 역공을 편다. 폭탄교사 중에는 법적대응에 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며 대부분 이들과 맞상대를 기피한다.

학교 관리자는 물론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언터쳐블 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또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들이 어떤 고통에 시달리는지 교육당국은 파악 조차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학생의 교육권 학습권도 너무 중요하다면서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라 이제는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사들을 학교에 방치한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교사에 대한 지도 감독 권한이 교육청에 있는 만큼 심사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 정확한 진상 조사 등을 통해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천교사모임회장 정성식 교사는 폭탄교사 논란에 일침을 놨다. “학부모단체가 안하무인 학부모에 대하여, 학생회가 교육적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에 대하여, 그리고 교원단체가 부적격교원에 대하여 냉정한 잣대를 댈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폭탄교사와 생활해야하는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는 한 학부모의 전화가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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