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의 눈]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듀프레스의 눈]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06.05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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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2012년이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놀이시간”과 “놀 권리”를 말하지 않을 때 우리학교는 감히 놀이시간을 만들었다. 지난 5월 23일 발표된 포용국가 아동정책 과제 4-4에서 제시된 “창의적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에서 제시된 사례처럼 80분 블록수업으로 중간놀이시간 30분과 점심시간 1시간을 혁신학교 운영 첫해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교사에게 강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종시간을 유연화했다. 9시 첫 블록(1교시) 시작 시간, 10시 50분 둘째 블록(3교시) 시작 시간, 13시 10분 셋째 블록(5교시) 시작 시간에만 종이 울렸다. 수업의 시작과 끝의 경계를 느슨하게 함으로써 40분 수업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했다. 중간에 종이 울리지 않기 때문에 4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교사는 그렇게 운영해도 별 지장이 없었다. 40분 수업에 길들여진 교사와 학생들에게 갑자기 모두 80분 블록수업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30분의 놀이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 초에는 20학급 중 서너 학급만 놀이시간에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 대부분의 학급은 교실에서 놀잇감을 갖고 놀게 하거나 도서관에 다녀오는 것 정도를 허용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사고’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감이었다. 바깥놀이를 허용한 학급의 담임교사들은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모두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서 같이 놀거나 학생들이 노는 주변에 서서 관찰을 했다. 이 역시도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놀이시간 30분은 이렇게 뚜렷한 틀이 없는 구조에서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그 출발이었다.

5월쯤 되자 교사회의 시간에 놀이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 교사가 놀이시간에 바깥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니까 아이들이 3교시 집중력이 더 좋아지는 거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높았던 관리자는 보건교사에게 안전사고 발생률에 대해 물었고, 보건교사는 놀이시간을 운영하지 않았던 작년에 비해 안전사고 발생이 더 높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자 블록수업을 시도하는 교사도, 놀이시간에 바깥놀이를 허용하는 교사도 늘어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모든 교사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놀이시간의 안전 책임에 대한 문제가 교사회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바깥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교실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 운동장 밖에 있을 수 없으니 각 학년에서 담임교사들이 반별로 돌아가면서 운동장을 지키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5-6학년 학생 봉사활동으로 놀이시간 안전 지킴이 희망자를 받아서 놀이시간 학교 곳곳을 잘 살필 수 있는 추가적인 방법도 제안되었다. 당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학교 보안관과 함께 교장과 교감이 서로 돌아가면서 운동장을 지키는 것으로 개선을 해 나갔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2012년이다. 당시 1학년 담임에 학년부장을 하고 있던 나에게 한 학부모가 찾아왔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을 함께 보내면서 잘 알고 있는 학부모였다. 학교 운동장을 방과후 놀이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으니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자발적 학부모 동아리라는 막연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터라 나는 당장 “학부모 놀이 동아리 운영계획서”를 써서 교장실에 찾아갔다. 편해문 선생님과 함께 한 학부모 놀이연수를 기획하고, 학부모 놀이동아리 참가신청서를 받고, 그 해부터 방과후 “와글와글 놀이터”를 열게 되었다.

예상보다 저조한 10명 안팎의 신청 희망자 숫자에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 기존 학부모 조직과의 갈등도 있었고, 학부모가 학부모 민원을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학부모 놀이 동아리는 2019년 현재도 방과후 놀이터를 열고, 가을이면 달밤놀이터를 축제처럼 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학부모의 자발성, 놀이가 왜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가에 대한 의지가 출발점이었다.

2018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더 놀이학교”라는 초등학교 저학년 3시 하교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중간 놀이시간을 늘리고, 방과후 놀이시간을 만들어서 학부모들의 돌봄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헌신으로 시작한 것을 제도화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법이다. 소요 재정이라든지 예산 확보 방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에 현장교사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이 사안은 공론의 장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9년 5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이 시도는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사례로 들고 있는 공간 혁신이나 강원도 교육청의 놀이밥 정책까지도 동일하다. 지난 해 저출산위의 초등 3시 하교 정책 포럼에서 강원도의 놀이밥이 주요 사례로 언급되자 부담을 느낀 강원도 교육청 담당자가 이것을 사례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계속 언급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며칠 전 국어시간에 “른, 은, 몸”처럼 뒤집어도 글자가 되는 낱자들을 배우며 그 낱자 카드를 집에 가져가서 엄마 아빠와 퀴즈 놀이를 해보라고 했다. 다음 날 확인해보니 우리반에서 그 놀이를 한 아이는 딱 두 명이었다. “우리 아빠는 두 개나 틀렸어요”하면서 매우 기분이 좋아서 자기 경험담을 얘기한다. 이것은 놀이인가 학습인가 숙제인가?

또 얼마 전에는 우유팩을 접어서 만든 딱지놀이에 한창이던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놀고 있길래 뭘 하나 봤더니 교실 바닥에 그어놓은 사방칸에서 딱지를 이용해 알까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개인전으로, 어느 날은 토너먼트로, 어느 날은 편을 짜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나는 우유팩으로 딱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을 뿐이고, 교실 한 가운데를 널찍하게 놀이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책상 배치를 해 두었을 뿐인데, 1학년 우리반 아이들은 여기에 온갖 가지 색칠을 해서 팽이도 돌리고, 두 개 세 개를 합체해서 비행체도 만들고, 알까기 놀이도 한다. 논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닌가?

20여년 아이들과 부대끼며 경험하고 배운 것을 근거로 감히, 포용국가 아동정책의 성공을 위해 두 가지만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하나는 놀이는 소비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나 테마파크, 놀이시설은 놀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의 필요충분조건은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있으면 놀잇감이 없어도 잘 논다. 무엇이든 새로운 놀잇감으로 창조해내는 능력도 있다. 육아와 놀이를 노동과 부담으로 인식하는 부모세대에게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추진하는 정책 당국은 “친구”와 만날 수 있는 시공간, 이웃을 만들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또 하나는 놀 시간과 놀 권리를 위해 부모세대에게 여유를 줘야 한다. 지금처럼 초등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노동력을 쥐어짜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북유럽이 70년대 돌봄의 사회화, 탈가족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펴다가 그 한계를 인식하고 양육의 부모권 개념을 도입하며 돌봄의 재가족화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과정을 주목하는 정책을 구체화하지 못한다면 “포용국가 아동정책” 역시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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