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교사, 워라밸 교실] 김선생의 농사직설⑤ _ 봄나물
[소확행 교사, 워라밸 교실] 김선생의 농사직설⑤ _ 봄나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5.03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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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텃밭으로 ‘장’보러 간다

언 땅을 뚫고 어김없이 제 시간, 제자리에서 새싹을 틔우는 봄나물에는 ‘설렘’이 묻어 있다. 텃밭에 갈 때마다 쪼그려 앉아 ‘언제쯤 나오려나’ 맨 땅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혹시 얼어죽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나를 쓰담쓰담하듯 솟아오르는 새싹을 보는 기쁨은 그 자체가 힐링이다. 봄나물들은 특별히 관리해주지 않아도 매년 ‘제자리’에서 저절로 나고 자란다. 정말 근면성실, 착실한 ‘모범작물’이다. 게다가 번식력도 뛰어나서 풀이 자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텃밭을 둘러싸고 있는 유실수 밑에 다양한 봄나물씨앗을 마구 뿌려 놨다. ‘풀 나는 꼴’이 너무 싫어서 생각해낸 ‘잔꾀’였다. 작전은 대성공이다. 풀은 풀인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풀이 매년 저절로 나온다. 게다가 꽃까지 예쁘다. 가성비 끝판왕 작물이다.

나의 텃밭에는 취나물・곤드레나물・방풍나물・명이나물・참나물・비름나물・머위・두릅・곰취・달래・미나리 등 11종류의 봄나물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 엄나무순・오가피순・다래순・뽕잎・구기자순・도라지순・잔대순 등 어린 순까지 포함하면 총 18종류의 봄나물을 먹을 수 있다. 노지에서 자라는 나물은 어린 순들이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따줘야 계속 연한 잎을 먹을 수 있다. 좁은 땅에 이것저것 심다보니 양은 많지 않지만,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충분하다. 먹고 또 먹어서 질리면 말렸다가 겨우내 먹는다.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봄나물 중 특별히 마음이 더 가는 녀석들이 있다. 우선 2월 말부터 새싹이 올라오는 명이나물(산마늘)이다. 봄나물계의 ‘스타터’라고 할 수 있다. 고깃집에 가면 장아찌로 나오는 명이나물은 생으로 먹여야 더 맛있다. 마늘향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명이나물 잎사귀에는 비밀이 하나있다. 5년 이상 되어야 한 뿌리에서 2개의 잎사귀가 나오는데, 내년을 위해 반드시 1개만 따야 한다. 나도 올해 처음으로 명이나물을 수확했다. 10년은 되어야 마늘향이 진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향이 좋다. ‘명이나물 잎사귀의 진실’을 알게 된 후 깨달았다. ‘아, 그래서 명이나물이 비싸구나.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제값을 하는 구나’하고.

곤드레 비빔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곤드레나물은 맛은 물론 꽃까지 예쁘다. 엉겅퀴꽃을 닮은 보라색 꽃이 옹기종기 모여 핀다. 가을바람에 곤드레꽃이 ‘곤드레만드레 술 취한 사람 걸음걸이처럼’ 휘청거리면, ‘한들거리면 코스모스’보다 더 예쁘다(게다가 코스모스는 먹을 수도 없다). 곤드레 옆에는 취나물이 자리 잡고 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곤드레와는 다르게 취나물은 쌉쌀하다. 가을이면 쑥부쟁이를 닮은 하얀 꽃이 오랫동안 핀다. 꽃이 지고나면 민들레처럼 털이 달린 씨앗이 여기저기 날아간다. 덕분에 약방의 감초처럼 텃밭 구석구석 취나물 없는 곳이 없다. 꽃이 예쁘기로는 ‘달래’를 따라올 봄나물이 없다. 6월이 되면 ‘알리움’같은 연보랏빛 둥근 꽃뭉치가 가늘고 기다란 꽃대에 매달려 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특히 김을 부셔 넣고 무친 달래무침은 우리 집 ‘밥도둑’이다. 딸내미의 입맛 없는 아침반찬으로, 남편의 지친 하루를 달래줄 저녁반찬으로 활약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은 머위이다. 쓴 맛내는 잎사귀보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은 줄기를 좋아한다. 줄기가 굵어지면 베어다가 들깨를 듬뿍 넣고 볶으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올해 처음 안 사실인데, 머위는 암놈과 수놈이 따로 있다. 머위 새싹이 나왔는지 살펴보다가 머위 암꽃을 발견했다. 머위 암꽃은 잎사귀가 나오기 전에 땅 위에 덩그러니 홀로 피어난다. 수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큰 꽃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둥글게 모여 큼직한 한 송이 꽃을 만든다. 결국 한 송이 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송이이며, 각각의 송이를 들여다보면 보잘 것 없이 작은 꽃송이들이 빽빽이 들어있다. 전체가 아름다운 꽃이다. 그래서 일까. 머위 암꽃의 꽃말은 공평이다. 참 어울리는 꽃말이다. 개인의 희생이 억울하지 않으려면 전체는 늘 공평해야 한다.

매실나무 밑에 세들어 사는 머위이다. 올해 처음 머위 암꽃을 발견했다. 전체가 아름다운 꽃, 꽃말이 멋진 머위 암꽃은 튀겨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우리집은 2개밖에 없어서 올해는 패스했다. 1인1송이는 먹어야 하니까. 사진찍는 기술이 없어 머위 암꽃의 묘한 매력을 담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는 사진 잘찍는 블로거들이 올린 수많은 사진이 있으니, 나까지 잘 찍어서 올릴 필요는 없다며 또다시 합리화를 해본다. 합리화는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약'이다.
매실나무 밑에 세들어 사는 머위이다. 올해 처음 머위 암꽃을 발견했다. 전체가 아름다운 꽃, 꽃말이 멋진 머위 암꽃은 튀겨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우리집은 2개밖에 없어서 올해는 패스했다. 1인1송이는 먹어야 하니까. 사진찍는 기술이 없어 머위 암꽃의 묘한 매력을 담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는 사진 잘찍는 블로거들이 올린 수많은 사진이 있으니, 나까지 잘 찍어서 올릴 필요는 없다며 또다시 합리화를 해본다. 합리화는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약'이다.

엄마가 자식 자랑하듯 봄나물 자랑을 더 하고 싶은데 한정된 지면이 아쉽다. 매년 봄이 되면 봄나물의 효능’이니 요리법이니 방송마다 떠들지만, 나는 그런 것은 잘 모른다. 그냥 봄나물을 통해 ‘건강한 봄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에도 텃밭으로 ‘장’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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