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업 이야기] '교수자 대신 대화자인 나'
[나의 수업 이야기] '교수자 대신 대화자인 나'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4.20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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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순경 '내가 달라져야 세상과 교육이 달라진다' 저자
윤순경 교수
윤순경 교수

나는 수업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거나 구성을 촉진하기 보다 그들과 대화를 원한다.

우리 학생들이 나를 교수자로서 인식하므로 내가 그들에 비해 권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대화를 원한다.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하는 순간 교수자에게 힘이 실리게 되고 배우는 사람은 왠지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움츠러들 수 있다.

구성주의가 교육계에 도입되면서 촉진자로서의 교수자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지식 전달자에 비해 한결 교수자의 힘이 약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촉진자도 좋은 교수자의 모습이긴 한데 현재 우리나라 교육계는 여전히 '지식' 구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학습자를 '촉진'하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는다.

나도 수업의 목표는 있지만 '지식'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지식을 아는 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타인과 논의를 하려면 지식이 필요할 수 있다. 필요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인이 지식을 구성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개인마다 구성한 지식이 서로 다른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를 나는 알고 싶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인간적으로 알고 싶다.

이를 위해서 나는 그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그들이 구성한 배움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싶다.

내가 대화를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우리 학생들에게 교수자의 권위에서 다소 자유롭게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얼마든지 주눅이 들 수도 있고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작년에 '반말하는 교사'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상당히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같이 논의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반말 홍보 영상이 아니라 관계 홍보 영상입니다"라는 말이 나에게 가장 와 닿는 부분이다.

나 역시 '교수자라는 말 대신 대화자라는 말을 쓰자'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나와 함께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내뱉으며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권력을 내려놓고 그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다.

지식이 아니라 대화의 과정 자체가 바로 학습이고 배움임을 나에게 깨우쳐 준 사회문화적 관점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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