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의 눈] 학부모 총회,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에듀프레스의 눈] 학부모 총회,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03.23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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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사회장
한희정 교사

초중고 학교 대부분이 이번 주에 학부모 총회를 열었으리라. 3월 초부터 하기는 부담스러우니 3월 중순 이후 하는 것이 다반사다.

거기에 일거양득이라고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위한 학부모 공개수업까지 겹으로 한다.

아니다, 법령에 따라 진행해야 할 학부모 연수까지 겹으로 하니 일거삼득이다. 아니다, 법령에 따라 진행해야 할 학부모 연수 가짓수만 열 개는 족히 넘으니 일거십삼득인 셈이다.

학부모인 필자도 큰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수업공개 및 학부모 총회 관련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수업공개는 12시부터 12시 50분까지, 교사인 내가 거의 갈 수 없는 시간이다.

그 후 시간은 줄줄이 해야 할 연수 내용으로 빼곡 하고, 그 후엔 학부모 총회, 그리고 4시 30분에야 담임교사와의 만남 시간이니, 4시 30분으로 예정된 담임교사와의 만남 시간이라도 참석하겠다고 신청서를 썼다.

그러나 아뿔싸, 그 총회 날짜가 3월 20일, 내가 교사로 치러야 하는 공개수업 및 학부모 총회와 날짜가 같았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총회일도 3월 20일이었다는 건, 뭐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냥 학부모로 “참여불가” 위임장을 제출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으니 말이다.

교사인 필자는 3월 20일 학부모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를 준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처음 학교에 들어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염려와 걱정, 기대와 우려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안을 만들고, 필요한 교구를 준비했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1학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불필요한 염려와 걱정을 줄이는 길이라 보고, 각 교과별로, 특색활동별로 어떤 내용을 배우게 되는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 상세한 안내문을 준비했다.

아, 또 하나 별도의 사진 촬영 시간이 있으니 수업 중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금지한다는 안내문까지.

우리반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자녀가 앉아 있는 자리 뒤에서 수업을 지켜봐 주실 것을 안내하고 아이들에게는 엄마나 아빠가 왔다고 손 흔들거나 하지 말고 평소에 하는 것처럼 공부를 하자고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평소보다 훌륭하게 수업을 잘 마쳤다. 공개수업을 마치고 평소처럼, 돌봄교실로 가는 아이들, 방과후로 가는 아이들을 안내해주고, 남은 아이들과 함께 교문 아래 횡단보도까지 안내를 해주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 사.이. 꽉 들어찼던 교실은 휑하다. 참여하셨던 학부모님의 절반 정도만 교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어지는 순서는 학교 방송으로 진행되는 학부모 연수다.

스무 장쯤 되는 유인물을 나눠주고(이걸 일일이 한 장씩 모아서 철심을 박는 일도 담임교사들의 몫이었다), 교실에 썰렁하니 둘러앉아 화질도 안좋고 음향도 안좋은 방송을 듣고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러는 사이, ‘아, 들을 거 없어’하는 표정으로 한두 분씩 교실을 떠나시는 풍경을. 해마다 겪지만, 해마다 우울해진다.

그렇게 우울감을 씹으며 삼십 분 넘는 시간을 보내면 이제 담임교사와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미 몇 분은 교실을 떠나셨고, 나는 남아계신 분들을 빠르게 체크하고, 공들여 준비했던 학급운영과 1학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안내문을 나눠 드린다.

분위기라도 띄워보자 싶어 언제나 돌아가면서 소개하고 인사하고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한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잘 적응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면 어쨌든 교사인 내 어깨가 조금은 펴진다.

학급운영에 대해, 1학년 교육과정의 한 해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정적으로 가득해 무겁기만 한 시간이 남아 있다. 바로 학부모회 구성을 위한 학급 대표 두 분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학교는 녹색학부모회를 작년부터 없애서 부담이 반 이상 줄었다. 필자는 늘 이것이 왜 담임의 일인가 싶어서 학부모님들께서 알아서 해 달라고 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올해는 교육과정 관련 질문이 많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독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부담스러운 시간인데요. 우리반 학부모 대표 두 분을 선출해 주셔야 합니다. 혹시 도움을 주실 분이 있을까요?” 2분 정도의 정적 끝에 한 분이 손을 드셨다. 감사하다고 했다.

“한 분이 더 필요한데요.” 이후 긴 정적을 깨고 나는 그냥 마무리를 했다. “없으시면, 우리 반은 한 분만 하시는 걸로 할게요.”

여기서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학부모 총회는 왜 하는가?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에 의해 3월 중에 정기총회를 개최하라고 되어 있어서? 학부모 공개수업은 왜 하는가?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따라 교사는 학부모에게 연 1회 이상 수업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어서? 학폭예방, 약물오남용예방, 생명존중 자살예방, 선행교육 금지, 학생 인권 등등 열 가지도 넘는 연수는 왜 하는가? 법령에 따라 해야 하니까?

학교의 고육지책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에 있지 않다. 이 때 아니면 이렇게 다수의 학부모를 학교에 오시도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업공개라는 조건을 달지 않으면, 담임교사와의 만남 시간을 가장 뒤로 미루지 않으면, 학부모의 참여율을 높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는 각종 실적 보고에 이 날의 참여 학부모 숫자를 넣는다. 일거십삼득을 노렸으나 일거일득도 되지 못하는 일을 어쩌면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 보고에는 ‘이렇게 많은 학부모가 참여해서 이런 연수를 들었습니다’, 하는 것이다.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걸 또 실적으로 보고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진지하게 묻는다.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런 낯 뜨거운 현실을 모르는가?

모른다면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 행정만 펼치고 있는 무능을 존재 증명하는 셈이고, 안다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시대적 적폐의 표상인 셈이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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