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남사중, “산타가 된 아이들...” 기부천사들의 따뜻한 겨울 연가
용인 남사중, “산타가 된 아이들...” 기부천사들의 따뜻한 겨울 연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12.1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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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남사중학교 학생들. 각자 만든 작품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남사중학교 학생들. 각자 만든 작품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한기가 안개처럼 온몸을 감싸던 날, 경기 용인시 남사중학교 3학년 2반. 강은이 교사(37)가 담임을 맡은 교실에 들어서자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둠마다 손놀림이 분주하다.

솜털이 유난히 보슬거리는 알록달록 털실로 뜨개질을 하는가 하면 쓰다버린 철사 옷걸이를 구부리고 조인다. 창가 쪽 모둠은 조그만 컵에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쌤 이렇게 하면 꼬마 친구들이 좋아할까요.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자꾸만 실이 풀어져요.” 한 학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소아암 환자들에게 줄 모자를 뜨고 있는데 실이 요리조리 풀어지는 모양이다.

“아유 예쁘다. 이 모자 쓰면 금방 낫겠네.” 강 교사가 토닥토닥 해주니 금방 얼굴이 풀어진다.

오늘은 사회수업, 국민경제와 경제생활 단원에 나오는 사회참여 및 기부활동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직접 도움을 줄 대상을 정하고 그들에게 필요란 물건을 만들어 전달하거나 판매를 통해 모은 수익금을 전달하는 일종이 사회참여 봉사활동이다.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자 뜨기, 중동에 사는 친구들에게 보낼 휴대용 선풍기 만들기,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 선물 등 다양하다. 직접 만든 물품은 오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소아암 환자들을 면역력이 약해 감기 걸리기 쉽다고 들었어요. 처음 하는 뜨개질이라 쉽지만은 않았지만 내가 만든 담요로 따뜻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절로 행복해 졌어요” 졸업을 앞둔 지원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을 컵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린 뒤 사탕을 담아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판매할거라던 효림이는 “결국 선생님 책상에 제 컵이 놓일 것 같다”며 깔깔거렸다.

“제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심장이 따뜻한 사람, 그게 저였으면 좋겠어요.” 살구색 털모자를 뜨던 하윤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굴었다.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봉사활동 수업. 이제는 남사중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은 거쳐 가는 통과의례가 됐다.

남사중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이 소아암 환자를 위해 만든 털모자.
남사중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이 소아암 환자를 위해 만든 털모자.

무엇을 만들지, 누구에게 어떻게 기부할지 등은 모두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강 교사는 옆에서 지켜보고 필요한 것을 거들 뿐 개입하지 않는다. 사회봉사나 기부는 결국 각자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원래는 1학기 단원이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뭔가 뜻깊은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뒤에 시작한 것이죠.”

사실 이런 수업을 시작한 데에는 몇 년 전 우연히 시청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소아함 환자들의 사연들 보면서 그들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머리카락이란 것을 알았다. 즉시 방송사에 머리카락을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염색한 머리카락은 안 된다는 것이다.

며칠 뒤 자신이 가르치는 반 학생들에게 머리카락 기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무심코 툭 뱉은 말이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자신들도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다며 직접 자른 머리카락을 학생들이 들고 온 것이다. 강 교사도 염색을 쫙 뺀 뒤 학생들과 함께 머리카락을 가발회사에 보냈다.

“우리 학교는 시골학교예요. 도시 아이들이 학업의 무게로 힘들어할 때 우리 아이들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죠. 사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학생들이 많은데도 오히려 선행을 베푸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체능이나 공부에는 재능이 필요하지만 따듯한 마음이나 감정을 가지는 데에는 따로 재능이 필요하지 않죠. 저는 교육을 통해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었어요. 사회 교과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활동과 참여를 배우는 과목입니다.”

강 교사는 6년 전부터 사회참여 수업을 통해 노인정 재능기부, 소아암 환자 돕기 머리카락 기부, 독도 홍보를 위한 기념품 제작 수업을 시도하였고 현재는 아날로그 감성수업 퍼실리테이션(경기도 교사 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다양한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웃음 가득한 남사중학교.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순간 강 교사가 학생들을 보듬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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