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어떤’ 것
[교육칼럼]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어떤’ 것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11.27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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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강정애 숙명여대총장
강정애 숙명여대총장

많은 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기반의 공학교육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맞는 말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최소한 개념정리 정도는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내년부터 초등학생 코딩교육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코딩은 한마디로 컴퓨터가 쓰는 언어다. 인간이 컴퓨터와 협업해야 하는 시대이니, 그네들의 언어를 배워서 의사소통을 하자는 의미다. 대학들도 코딩관련 강의를 필수 교양과목화하여 앞다투어 개설 중이다.

사회적 수요가 쏠리는 학문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시키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과연 컴퓨터의 문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디지털 시대의 앞서가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포럼은 미래고용보고서에서 2020년에 요구되는 교육목표 1위로 복잡한 문제를 푸는 능력을 꼽았다. 2위에서 5위까지는 비판적 사고, 창의력, 사람관리, 협업능력을 선정했다. 한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미래 인재의 조건으로 디자인 능력, 이야기를 다루는 능력, 조화 능력, 공감능력, 놀이 능력, 의미를 추구하는 능력 등 6가지 능력을 제시했다.

두가지 주장을 요약하자면,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의미하는 이른바 디자인 씽킹과 조직 내 협력을 이끄는 코워킹 마인드, 즉 인화력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렇다면 대학이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는 분명하다. 창의력과 소통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교육은 그 다음의 문제다. 물론 많은 대학들이 창의를 강조하긴 한다. 아니, 창의가 빠지면 외려 어색한 시대다. 융합 교육 확대나 캡스톤디자인, 플립드 러닝과 같은 수업 방법은 학생들의 능동적 참여와 비판적 사고 확장을 목표로 도입됐다.

최근 수년간 교육계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화두가 창의성 교육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조직 내 협업을 이끄는 인성과 소통능력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조사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0대 기업의 인재상 변화를 10년간 추적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 1순위로 꼽은 가치는 창의성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18년에는 소통 및 협력이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창의성은 여전히 중요한 항목이지만, 이제는 함께 일하는 능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서 인간만이 가진 경쟁력, 인간이 기계와 차별화된 지점이 더욱 주목받기 마련이다. 특히나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믿음과 윤리적 가치가 점점 사라지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우리 대학이 당면한 가장 큰 교육과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윤리적 책임감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숙명여대가 대학 최초로 실시한 멘토링 프로그램은 그런 면에서 지금도 매우 유효한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2000년대 초 취업경력개발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시작한 자문멘토프로그램은 CEO나 전문가 등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과 학생들을 멘토와 멘티로 이어주었다.

멘토들은 대학생 멘티들에게 전문적인 역량은 물론 오랜 사회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소통방법, 사람과 관계 맺는 법,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을 가르쳤다. 강의실에 앉아선 절대 배울 수 없는 덕목이다.

졸업생이 먼저 제안해 시작한 눈꽃 멘토링도 있다. 멘토링을 통해 받은 조언을 후배들에게 다시 나눠주고자 자발적으로 결성된 프로그램이다. 전문직 동문 100여명이 매 학기 학생들과 만나 진로나 개인적 고민도 듣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겸손과 배려, 매너 등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런 과정이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떤 효과를 가져오진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인성교육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성격 중 그 어떤 것도 본성적으로 우리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즉 인성은 천성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형성되는 점진적 과정이라는 말이다.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 1~2년 후가 아닌 50년, 100년 후의 미래를 봐야한다. 그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글은 한국장학리뷰 11월호에 실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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