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낙진 新作 『달나라로 간 소신』을 읽고…
[서평] 이낙진 新作 『달나라로 간 소신』을 읽고…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10.22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이선애 경남 지정중 교사
이낙진 新作 『달나라로 간 소신』

제가 사는 동네는 ‘완월(玩月)동’입니다. 신라 문성(文星) 고운 최치원이 산책을 하며 달을 감상한 동네라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합니다. 무학산 학봉에 있었다고 전하는 ‘고운대’로 가는 길목이니 보름달은 합포만에 두둥실 떠올라 파도를 희롱하고, 황금돼지의 전설이 남아있는 돝섬 사이로 노닐었겠지요.

옆 동네의 이름들도 시간차를 둔 듯 반월(半月)동, 신월(新月)동, 월영(月影)동으로 이어집니다. 눈썹 같은 신월은 반달로 자라났을 것이고, 둥근 보름달이 되었을 때 제가 글을 쓰는 이곳 어디쯤에 고운 선생의 발길이 머물렀다고 믿습니다.^^ 천 년의 시간을 두고 그와 저는 달그림자 아름다운 합포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합포만 인근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와 아직도 무학산 언저리 작은 아파트에 사는 저는 온전히 마산사람입니다. 대학 교정 아래 댓거리(월영대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댓거리라고 한답니다) 길목에는 그 시절 언제나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가득 하였습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교문을 들어서면 매직으로 쓴 대자보 여러 장이 먼저 나와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설픈 굿쟁이로 연극동아리에 참여하였습니다. 유난스러웠던 연극반의 군기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작품을 올리는 내내 학교 앞 할매집 막걸리병은 끝도 없이 쌓여갔습니다. 유진 오닐과 브레이트, 샤무엘 베케트를 읽었고, 이강백과 윤대성의 희곡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가슴이 뜨거웠던 어느 선배는 운동권에 참여하여 경찰을 피해 동아리방으로 친구의 자취방으로 숨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저와 같은 세대를 그린 책을 지난 주 내내 즐겁게 읽었습니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낙진 작가의 『달나라로 간 소신』(지성과감성#)은 동 시간대를 살아간 젊은 날을 추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던 시간의 씨실과 날실 가닥들을 풀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교차점에 피어난 인연들을 잘 엮어 옷감으로 짜고 자잘한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2007년과 2018년의 같고도 다른 여름과 청춘은 찬찬히 시간의 베틀에 얹어져서 ‘덜거덕 덜거덕’ 이런 소리를 내면서 결 고운 세모시 한 감이 나왔습니다. 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의 읽는 맛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내아이 둘을 둔 제게는 딸아이 둘을 키우는 연하고 사근사근한 이야기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선착순 달리기를 하건 다른 훈련을 받건 모두가 다음 훈련을 하고, 시간이 지나야 끝이 난다. 1등 한 번 못 해본 핑계이지만 내 삶의 주관이 됐다. 수학시험에서 문제 하나를 틀렸다며 은이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어도 “참 잘한 거야. 한두 문제 정도는 틀려야지 앞으로도 더 잘하겠다는 생각이 할 거 아니니?” 하며 달랜다. p.65

이처럼 자신의 시간 속에 또 하나의 사건이 중첩되어 여러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읽는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자신의 군대 이야기 속에 딸의 수학 시험 이야기가 함께 드러나고, 소소한 가족들과의 이야기 한 귀퉁이에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 체계도 숨어있습니다. 그의 글 행간에 숨어있는 독서 편력을 찾아 제 독서이력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 가훈이라니요?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살고자했던 제 마음의 한 자락을 보는 듯합니다.

즈믄 해의 가을이 지났을 것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무학산 고운대에 올랐습니다. 산비탈엔 보랏빛 꽃향유가 서늘하게 웃고 당신께서 앉았을 샘가엔 연분홍 고마리 무성하였습니다. 합포만 물결 위로 고운 선생과 저의 시간은 다른 차원 어딘가에서 만날게 될 것입니다. 천년의 시선이 얽혀 있는 합포만의 작은 섬은 가을꽃이 되어 반짝입니다. 모두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을되십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