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 천년의 선덕(善德) 후학 양성의 빛이 되다’
‘성주 이씨 천년의 선덕(善德) 후학 양성의 빛이 되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09.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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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만 생각하고 단체를 망각할 때 그 이름은 단체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요, 공(公)을 앞세우고 사(私)를 뒤로 할 때 그 개인은 단체와 함께 영생할 것이다.” 농서장학회 초대 이사장 이명섭변호사가 작성한 설립취지서 일부로, 국내 손꼽히는 명문가로 알려진 성주 이씨 집안의 오랜 전통이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문중의 품격을 잃지 말라는 일종의 불문율(不文律)인 셈이다.

지난 8월 24일 성주이씨 문중이 운영하는 농서장학재단이 전국에서 선발된 24명의 인재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성주이씨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와 조선조를 거쳐 천 년 동안 충신을 배출해온 ‘충절의 명가(名家)’로 유명하다.

이날 장학금 수여식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봉두산 아래 위치한 봉산재(鳳山齋)에서 열렸다. 이곳은 성주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의 영정이 모셔진 유서 깊은 곳. 전국에서 선발된 장학생 24명과 학부모, 재단 관계자 등 52명이 참석해 시종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수상자는 이준아씨(중앙대 전통연희학과 4) 등 24명. 이들은 성주이씨전국시도종친회 추천을 받아 학교성적과 발전 가능성을 중심으로 심사 후 선발된 준재들이다. 학생들에게는 장학증서와 함께 1인당 2백만 원의 장학금이 주어진다.

이기섭사무국장 사회로 시작된 이날 수여식에서 이흥순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훌륭한조상 덕에 훌륭한 후예로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정직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어 “‘선조(先祖)가 선덕(善德)이 있는데 후손이 알지 못한다면 어리석음이요, 알고도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의 뿌리는 조상이고 조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면서 장학금에 담긴 의미를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대구화수회 이장수 사무국장은 “농서장학금에는 인재를 육성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라는 선조들의 유지가 담겨 있다”며 “언제 어디서든 가슴을 펴고 자랑스러운 후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농서장학회 이근정 이사는 “오늘 받은 장학증서는 미래를 약속하는 증표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조상을 가진 성주이씨 후손이라는 존재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며 고마움과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수상 학생들을 대표해 답사를 한 이준아씨는 “튼튼하고 뿌리 깊은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며 선조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장학회 후원에 힘입어 학업에 충실하고 국가와 사회, 그리고 후대들을 위한 튼튼한 뿌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상식에 이어 성주군화수회 이시웅회장이 진행한 장학생 교육시간에서는 “성주 이씨 문중의 전통과 유산을 되새기고 지켜 후대들에게 물려주자”고 당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폭염 속에서도 학생들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선조들의 유지에 귀를 기울였다.

가르침이 컷 던 탓일까? 장학증서를 받아든 학생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장학금을 받고 보니 낳아주신 부모님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연주씨(부산대 건축과 2)는 “조상들이 이룬 업적을 본받아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길홍씨는 “조상이 있기에 오늘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단순히 장학금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후손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뿌듯해 했다.

농서장학회는 지난 1994년 육영재단을 구성하여 후진교육에 공헌하고 선조의 유지를 구현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지난 24년간 장학금을 받은 학생만 1200여 명. 15억 7천여만 원이 장학금으로 지급됐다.

이들은 조상의 뜻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취지에 따라 매년 본관이 있는 성주로 학생과 학부모들을 불러 선조 유적지 순회 교육 후 장학금을 나눠준다.

형식적인 수여식이 아니라 조상들의 묘역을 둘러보고 문중의 유물이 전시된 전시관 견학, 그리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명성을 날렸던 성주이씨 선조들의 시조 20여점이 새겨진 시비(詩碑)공원을 둘러보고 교육도 실시한다. 일종의 ‘뿌리알기’ 체험교육인 셈이다.

시비공원에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라는 구절이 유명한 고려 정당문학 매운당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와 지식인들의 위선(僞善)을 풍자한 ‘까마귀 검다하되 백로야 웃지마라’로 시작되는 조선 초 문인 이직(李稷)의 오로시 등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80대 할아버지부터 10대 소년까지, 함께 다독이며 조상의 얼을 기리는 농서장학회. 숭조효친(崇祖孝親)의 윤리와 예절을 소중히 여기는 한 가문의 장학금 수여식은 단순한 학자금 지원이 아닌 대대손손 높은 정신문화를 추구해 온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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