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 아주대총장, "생각의 근육을 갖춘 인재 기르자"
박형주 아주대총장, "생각의 근육을 갖춘 인재 기르자"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08.2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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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아주대 총장
박형주 아주대 총장

17세기 제주도에 표류해온 네덜란드 청년 헨드릭 하멜이 조선에서 13년을 지낸 뒤 쓴 여행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조선의 아이들은 낮이고 밤이고 책을 읽는다. 아이들이 책을 이해하는 정도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19세기 말에 강화도에서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프랑스 군인이자 화가인 장 앙리 주버의 여행기에는, '이 나라에서는 빈부를 막론하고 집에 책이 있다. 프랑스인으로서 자존심 상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이런 증언은 우리나라 교육열의 역사가 근대화 과정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준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육의 내용은 어떤 거였을까. 리더십을 갖춘 소수의 인재는 큰 그림을 보는 능력과 전략적 사고를 갖추어 조직을 키워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남이 그린 큰 그림 속에서 퍼즐의 한 조각처럼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자기 몫을 해낸다. 우리 교육은 이런 인재를 길러내며 그 시대에 필요했던 교육의 기능을 잘 수행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20세기 후반부를 강타한 디지털 혁명은 보이지 않는 가상세계에 머물렀지만, 어느새 로봇이나 사물인터넷과 결합하며 실물세계로 들어왔다. 인공지능은 무인자동차나 스마트 공장처럼 만질 수 있는 모습이 됐다.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너무 들떠 보여서인지, '실체 없는 수사'라거나 '지나쳐 버릴 과장(hype)'이라는 냉소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상세계와 실물세계의 연결이라는 거대 변화가 예전의 산업혁명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생산성 증대를 일으킬 것은 닥친 현실이다.  

이런 연결의 시대에, 대학도 고유의 학문 연구와 교육의 기능뿐 아니라, 상이한 분야의 충돌과 연결을 통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게 중요해졌다. 이런 세상에서는, 예전에 리더의 소양으로 여겨지던 전략적 마인드와 기획능력이 이제는 한참 내려와서 말단 직원에게도 필요한 소양이 됐다.

말단조차도 자신의 전략적 기획을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해 구현하는 중간 부서장의 모습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단순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서,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생각의 힘'을 갖춘 작은 리더들을 길러내는 것으로.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요즘 기업의 직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프로젝트형 조직에 속해 일한다.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된 신입 직원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지식을 습득하고,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와 만난다.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원들은 연령과 지역, 배경과 전문성이 다양하다.

몇 해 전에 방한했던 미국상공회의소의 제이슨 티스코 교육일자리연구소장은 미래의 대학은 이런 일자리의 조직 형태를 유사하게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대학도 학과의 칸막이 대신 문제 해결형 조직의 형태로 이합집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대에서는 이런 변화를 교육 과정에 구현하고 학생들이 자신이 선정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주기 위해 파란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적 대학으로 자주 언급되는 애리조나 주립대가 운영하는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과목과 비슷하다. 단순해 보이는 사회적 기술적 문제조차도 실제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적 체험과 난산의 과정을 요한다.

현장의 문제 이해 능력뿐 아니라,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깊이 있는 연관 분야의 학습을 하는 과정도 필수이다. 미래의 대학은 이런 학생 참여의 요소와 지적 체험의 요소를 적절하게 교육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학생 참여의 결과가 유치한 수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전공 분야와 무관하게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지적 소양을 한 단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초 교양 교육 전반을 점검하고, 전공 진입의 도구 정도가 아닌 대학 교육의 코어 수준으로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의 지식을 묶는 힘, 서로 다른 주장들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힘이 통찰의 능력이다. 이는 미래 사회에서의 생존에도 꼭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 될 수밖에 없고, 교육의 전 주기와 전 과정을 통해 다루어져야 한다. <이 글은 한국장학리뷰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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