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혁신 원천기술, 실험실 담 넘어 미래 밝혀야
[교육 칼럼] 혁신 원천기술, 실험실 담 넘어 미래 밝혀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06.30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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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무영 울산과학기술원 총장

“이쪽이 바닷물 속 소듐이온을 이용해 전기를 저장하는 해수전지입니다.” 연구진의 설명에 해외 바이어가 귀를 기울였다. 바이어들은 이어지는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UNIST와 ㈜우리해양이 함께 개발한 ‘해수전지 적용 등부표’가 지난 5월 인천에서 열린 국제항로표지협회 컨퍼런스 산업전시회에 첫 선을 보인 날의 풍경이다.

바다의 표지판이라 불리는 등부표는 캄캄한 바다에서 선박들을 향해 불을 밝힌다. 이 등부표에는 지금까지 납축전지가 적용돼왔다. 다만 납축전지는 무게가 무겁고, 바닷물에 침수되면 사용이 어렵다. UNIST가 개발한 해수전지는 바닷물을 이용해 전기를 충전하기 때문에 침수 문제가 없고 무게도 더 가볍다. 납축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해수전지가 각광받은 이유다. 해양환경에서 그 쓸모가 무궁무진한 해수전지는 큰 규모의 신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수전지는 UNIST가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수출형 연구브랜드’ 중 하나다. 수출형 연구브랜드 사업은 혁신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결과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사업이다. UNIST에서는 앞서 소개한 해수전지를 포함, 3진법을 기반으로 한 초저전력 인공지능 신경망칩, 췌장암을 진단할 차세대 내시경 기술 등 14개 대표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 연구가 바꿔낼 미래는 대학이 가야할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산업화 시대 어떤 천연자원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성공의 역사를 썼다. 자동차, 조선, 전자,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부진과 제조업 침체로 인한 위기는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 혁신 성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가 무엇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국가 경쟁력 확보 노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세계는 혁신 기술을 통한 성장 동력 마련에 분주하다. 3D프린팅,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통해 기존 제조업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기존 산업과 완전히 차별화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혁신 기술에 대한 추구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대 대학과 연구자의 역할은 더 이상 실험실 안과 논문 발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학협력과 창업을 통해 실험실에 잠자는 연구를 깨워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도록 대학의 역할을 확장하고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지식 생산의 기능을 넘어 혁신적 신기술의 공급, 그리고 과학기술의 사업화까지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게 대학에 요구되는 새로운 역할이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성사된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는 대학의 기술과 혁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계가 주목한 이 M&A의 주인공 모빌아이는 히브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암논 샤슈아와 지브 아비람이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직원 수 600여명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는데 인텔이 지불한 돈은 자그마치 17조 원에 이른다. 이스라엘 기업 사상 최대 인수금액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모빌아이의 혁신적 기술력에 있다.

모빌아이는 자율주행에 있어 핵심적 기술을 개발한 회사다.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완성차 업체가 하나도 없는 이스라엘에서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혁신적 기술에 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이의 적극적인 사업화 노력 덕분이었다.

UNIST는 수출형 연구브랜드를 통해 제2, 제3의 모빌아이를 만들어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우수하고 질 높은 연구를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육성된 연구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원천기술로 성장하고 있다. ‘연구 브랜드’를 중심으로 모여 집단연구,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 UNIST는 밝은 미래를 꿈꾼다.

해수전지로 밝혀진 부표가 어두운 바다를 밝혔던 것처럼, 앞으로 선정될 10개의 연구브랜드는 새 미래를 밝게 비출 것이다. UNIST는 혁신적인 과학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대학이 가야할 새로운 길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미래 먹거리 씨앗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 확대와 적극적인 사업화 전략이 대학은 물론 국가 전체의 활력과 혁신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길로 자리 잡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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