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선생'이 남긴 감동..‘문숙장학재단’의 後學 사랑
'자린고비 선생'이 남긴 감동..‘문숙장학재단’의 後學 사랑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8.03.19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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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근검절약하는 분이셨어요. 안 쓰고 안 입고, 한 푼 두 푼 모두 저축하셨죠. 자린고비도 그런 자린고비가 없었습니다. 그런 분이 수 백억 원대 재산을 모두 장학재단에 기부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가족들 생각해서 만류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17년째 장학금을 주고 있는 문숙장학재단 설립자 문형열 선생 이야기다.

재단법인 문숙장학재단은 국가관이 투철한 이공계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지난 2001년 설립됐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고 문형열 선생과 배우자 박치숙 여사의 함자에서 한 글자씩 따 ‘文淑’ 이란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출범 시켰다. ‘文淑’은 문형열 선생의 아호이기도 하다. 부부간 금슬이 남달랐기에 부인인 박 여사가 세상을 먼저 떠나자 자신의 아호를 문숙으로 정했다.

고 문형열 선생은 평안남도 출신인 실향민이다. 1941년 혈혈단신 월남한 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 다행히 손재주가 좋아 기계를 잘 다뤘던 그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안경 유리렌즈 사업으로 제법 돈을 모았다.

하지만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기에 주위에선 그를 “세상에 둘도 없는 자린고비”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모은 목숨 같은 재산을 어느 날 사회에 돌려주겠다며 장학재단을 설립해 버렸다.

“내가 번 돈이지만 내 것이 아니다. 나를 키워주고 먹고살게 해 준 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기왕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한다.” 갑작스런 결정에 어리둥절하던 가족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이해를 구했다.

문숙장학재단 최창선 이사장(오른쪽)이 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목숨 걸고 모은 재산 어려운 학생들 위해 쾌척

그렇게 출범한 문숙장학재단은 지난 17년간 87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대상은 경기지역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이공계 학생들. 미래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 문 초대 이사장은 거액을 쾌척했다.

조손가정이나 한부모 자녀, 소년·소녀가장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생들에게는 생활비 명목으로 장학금을 지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같은 사회봉사 단체에 매년 기부금을 보내 초등학생들에게 까지 성심껏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도움을 받아도 고마움을 모르는 세태라지만 문숙장학재단은 예외다. 장학재단 카페에는 장학금 받은 학생들이 올린 감사의 글들이 수북하다.

“문숙장학재단 덕분에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받은 은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 많이 했는데 다행히 재단 도움으로 무사히 등록금을 납부했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장학금보다 많은 액수여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필요한 곳에 잘 쓰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실제로 취재차 방문한 3월 16일에도 문숙장학재단 사무실에는 장학생들이 보내온 예쁜 감사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꽃분홍색 편지봉투에 꼬박꼬박 눌러 쓴 글씨만으로도 훈훈함이 느껴졌다.

“가끔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어요. 지나가다 들렀다며 치약을 사들고 왔더라고요. 그럴 때면 기특하고 보람도 느끼지요.” 2대 양승철 이사장에 이어 장학재단을 이끌고 있는 최창선 이사장은 학생이 보내온 ‘꽃편지’를 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국가의 미래를 우해 열심히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오히려 재단이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도 모르는 문숙 장학재단

문숙장학재단은 자신들의 선행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장학금 주는 행사도 거의 없다. 학생들에게 오라 가라 하는 불편도 주고 싶지 않고 생색내는 것 같아 더욱 조용하게 지낸다고 한다.

최 이사장은 설립자인 문형열 초대 이사장과 함께 재단 설립을 함께 주도했던 인물.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공직생활 경험을 살려 재단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다.

자신은 “설립자인 문형열 선생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며 인터뷰 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던 최 이사장. 그는 “설립자의 거룩한 뜻을 헛되지 않고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장학재단 운영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의 인재들이 장학금을 토대로 학업에 전념, 먼 훗날 사회의 동량이 돼 국가와 지역에 봉사하는 참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보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최 이사장은 “비록 지금을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이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처음부터 편하고 좋은 곳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어려운 현실에 과감히 몸을 던져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가는 강력한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또 한국장학재단이 운영하는 ‘전국장학재단협의회’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고 했다. “우리처럼 소규모 장학재단들이 마음 놓고 장학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국장학재단에게 고마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민관 장학재단 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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