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당신이 돈을 쓰는 방식은 합리적인가?
[교육칼럼] 당신이 돈을 쓰는 방식은 합리적인가?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12.25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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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장 KBS기자

YOLO(You Only Live Once)의 시대다. 나의 삶이 중요하고, 내가 중요하고, 내 시간이 중요하다. 특히 청년들은 내가 좋아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며칠 전 ‘라면 먹고 스타벅스 간다’는 기사도 봤다. 뭐든 내가 소중하면 그만이다. 소비도 그렇다. 우리는 내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합리적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인생은 이 크고 작은 결정의 모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는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재화와 소비재를 구입하는 방식은 진짜 합리적일까?

우리는 왜 ‘투썸플레이스’나 ‘앤젤리너스’보다 ‘스타벅스’를 더 좋아할까?(스타벅스의 국내 매출은 지난해 1조 원을 넘었다) 내가 산 ‘나이키’ 운동화는 과연 그만큼 품질이 좋을까? 다들 ‘코카콜라’가 좋다는데 나는 왜 ‘펩시콜라’가 끌릴까? 우리는 경제적 선택을 할 때 합리적 사고를 한다. 그런데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실은 그런 경우가 아주 많다(아! 나는 도대체 왜 이 겨울에 선글라스를 샀을까?). 왜 그럴까?

시장경제가 태동하던 수백 년 전에는 이런 시행착오가 거의 없었다.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일이 드물었다. 대부분의 선택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이웃의 노동력을 빌려 모내기를 하고 대가로 새참을 제공한다. ‘그 새참에 무슨 음식을 제공할까?’ 정도의 시장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화와 서비스가 넘친다. 그만큼 우리의 선택도 어려워졌다. 우리가 자꾸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을 하는 이유가 일단 여기에 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그래서 대형마트는 특정 품목의 가지 수를 지나치게 많이 진열하지 않는다. 참기름 브랜드는 3~5개 정도가 좋다. 20개 종류의 참기름이 진열돼 있다면 소비자는 구매를 포기할지 모른다).

또 하나 우리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것은 마케팅(상술)의 범람이다. 연말 스타벅스는 커피 14잔을 마시면 다이어리를 선물한다. ‘한정판 다이어리’다. 어림잡아 5만 원 이상의 소비가 필요하다. 이 다이어리에서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지운다면 소비자가격은 1~2천 원가량이다. 그런데도 연말만 되면 우리는 기어이 커피 14잔의 도장을 모아 이 ‘한정판’ 다이어리를 받는다. 합리적 시장 선택이 절대 아니다. 올 초 CGV는 맨 앞자리 몇 군데의 좌석 가격을 할인해주는 척하며 다수의 뒷자리 가격을 올렸다. 사실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 시장에는 이런 크고 작은 상술이 있다. 우리는 그 상술에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몇 해 전 김연아 선수가 등장하는 CF 하나로 삼성 에어컨의 매출은 3배 이상 급증했다. 특이한 일도 아니다. 20여 년 전 우리는 홍콩스타 주윤발이 “싸랑해요. 밀키스!”라고 외치자 밀키스의 매출이 10배로 뛴 적도 있다. 우리가 1)주윤발이 밀키스를 사랑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2)밀키스의 품질과 3)우리가 밀키스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돈의 효용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제품을 선택한다. 물론 이런 시장 결정도 합리적이라고 믿고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전지현C BHC’ 카피로 유명한 BHC치킨은 배우 전지현의 1회 CF에 12억 원을 지급한다. 치킨 몇 마리 값인가?

기업도 소비를 한다. 이를 투자라고 한다. 역시 합리적 소비가 쉽지 않다. 시장이 시시각각 바뀐다. 현대차가 멕시코에 1조 원 넘는 공장을 준공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섰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입된 차에 관세를 매길 분위기다. 자칫 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를 정작 미국에 팔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합리적 선택은 수조 원을 버는 대기업에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소비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이어가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우리는 그 제품의 효능(Benefit)이 내가 지불한 비용(Cost)보다 높다고 판단할 때 구매를 결정한다. 하지만 그 효능을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다. 온갖 경우의 수가 범람하고, 기업은 첨단 마케팅으로 우리의 합리적 소비를 방해한다. 시장 참여자(우리 또는 기업)들의 합리적 선택이 자꾸 헛다리를 짚는다. 경제학적인 설명이 어려워진다. 경제학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 아래 만들어졌다. 그럼 이제 경제학자들은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까?

그래서 자꾸 ‘행동경제학’이 발전한다. 인간의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연구하고 설명하려 한다. 심지어 올해 노벨 경제학상도 ‘행동경제학’을 연구해온 리차드 테일러(Richard Thaler)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우리가 왜 합리적 선택을 못하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 아무리 발전한들 우리의 비합리적 선택을 막아줄 수 있을까? 우리의 비합리적 시장 선택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2000년대 초 미국 경제는 갈수록 얼어붙었다. 연준(Fed)은 기준금리를 1%까지 낮추며 시장에 돈을 풀었다. 처음엔 일부가 돈을 빌려 집을 샀고, 그러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빌려 집을 샀고,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의 대다수가 돈을 빌려 집을 샀다. 하지만 집값은 결국 2006년 가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시민들이 늘었고, 파산이나 압류가 폭증했다. 모기지 회사가 망하고 은행들이 망하고 그렇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터졌다. 어떻게 수많은 대중들이 그렇게 어리석고 위험한 대출 행렬에 참여했는지 학자들의 뒤늦은 연구가 이어졌다. ‘왜 그들은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시장에 참여했을까?’ 하지만 이미 350만 가구의 집이 경매에 넘어간 뒤였다(당시 서울의 전체 주택수가 330만 가구다).

합리적 선택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단순히 운동화나 립스틱을 고르는 선택만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대학에 갈지, 어떤 아파트를 구입할지, 심지어 결혼 배우자까지 선택해야 한다. 그만큼 더 신중해야 한다.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내 선택은 맞다’는 맹신은 특히 위험하다. 잘못된 선택은 우리 인생에 그만큼의 비용을 청구한다. 경제를 알고 세상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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