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마음이 곧 진리다 – 스승 왕양명
[고전산책] 마음이 곧 진리다 – 스승 왕양명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12.17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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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이치다. 마음이 이치라고 말한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의 철학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미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지요. 그러니 마음을 살피면 누구든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윤리적 인간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가 바로 왕양명입니다. 그는 심즉리(心卽理)를 말했습니다. 마음이 곧 이치이자 진리, 마음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고 마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왕양명은 심즉리를 말하면서 주희가 말한 성즉리(性卽理)를 부정했습니다. 외재적인 진리, 타율적 도덕을 거부하고 내재적인 진리 즉, 자율적인 도덕을 주장했는데 사상사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인물이지요. 살아 있는 인간 마음 안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다하면 군자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왕양명. 구름 위의 진리가 아니라 땅 위의 진리, 성인만의 진리가 아니라 모두의 진리, 사람 밖의 진리가 아니라 사람 안의 진리를 말한 사람입니다. 그의 심즉리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기 전에 주희의 성즉리를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주희는 인간의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어 보았는데요. 인간의 마음과 활동은 대부분 정(情)으로만 드러난다고 했지요. 정은 말 그대로 감정입니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과 같은 칠정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데 악하게 드러날 여지도 많고, 제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욕심과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인간의 마음 중, 정(情)이란 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성(性)도 있습니다. 성은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순수한 본성으로 태어날 때 하늘에게서 선사받은 것이죠. 또 여기저기 우주 안의 다른 사물 안에서도 내재되어 있다고 주희는 말했습니다. 순결한 이치가 담겨 있고 순선한 것으로서 인간의 마음 중에 이 본성으로서의 마음이 중한 것이고 어떻게든 잘 지키고 마주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했어요. 보통의 인간은 정으로서 드러나기 쉽고 칠정에 휩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성을 봐야하고 성을 부여잡아야 하는데도 말이죠.

 

성과 정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지요. 쟁반 위에 물이 있고 물 안에 구슬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물이 흐려서 구슬이 잘 안 보입니다. 하지만 수양의 경지가 높은 사람은 물이 맑아 영롱한 구슬이 잘 보이는데 그 영롱한 구슬이 바로 성이라는 것이죠. 탁한 물은 인간의 욕심과 감정이고요. 영롱한 구슬과 같은 성은 마음의 순수한 본체이고 그것이 바로 이치이고 진리입니다. 그 성을 잘 찾아야 하는데 내 마음을 보고 바로 그 성을 직시하기가 쉽지 않으니 밖으로 인식의 창을 열어서 사물 하나하나의 이치를 궁구해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순선한 본체이자 우주적 진리인 그 성이란 게 보인답니다.

주희가 만든 성즉리의 성리학이 이렇게 진리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데 왕양명의 심즉리는 간단합니다. 그냥 마음이 곧 리(理) 입니다. 왕양명은 마음을 성과 정으로 분리해서 보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것이 바로 리가 아니라 그때그때 사물과 사태를 접할 때 드러나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이치라는 것이죠. 주희에 비해 진리에 다가가는 진입장벽이 정말 낮은데요. 안 그래도 왕양명의 철학은 사대부만이 아니라 상공인을 비롯한 사회 하층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요. 엘리트주의와 거리가 멀고 교육과 문화의 수혜자들이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제자 서애가 물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효도, 임금을 섬기는 충성, 벗과 사귀는 믿음, 백성을 다스리는 어짊 등 그 사이에는 수많은 이치가 있으니 그런 이치들을 반드시 알고 숙지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스승 왕양명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그러한 학설의 폐단이 오래되었으니 어찌 한마디 말로 깨우칠 수 있겠는가. 우선 그대가 질문한 것에 나아가 말해보자. 가령 부모를 섬기는 경우 부모에게서 효도의 이치를 구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기는 경우 임금에게서 충성의 이치를 구할 수 없으며 벗과 사귀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도 벗과 백성에게서 믿음과 어짊의 이치를 구할 수 없다. 모두가 다만 이 마음에 있을 뿐이니 마음이 곧 리(理)다. 이 마음이 사욕에 가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천리(天理)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가져와 보탤 필요가 없다. 이 순수한 천리의 마음이 부모를 섬기는 장에서 드러난 것이 바로 효도고 임금을 섬기는 장에서 드러난 것이 바로 충성이며 벗과 사귀고 백성을 다스리는 장에서 드러난 것이 바로 믿음과 어짊이다. 다만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데 힘쓰기만 하면 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 임금을 섬길 때는 충, 벗과 사귈 때는 믿음, 백성들을 다스리고 할 때 어짊. 그때그때 지켜야할 도덕 원리들이 있습니다. 추상적인 도덕원리 말고도 세부적인 절목과 구체적인 규범들도 있을 것인데 왕양명은 그다지 그런 원리와 규범들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만 다하면 됩니다. 모두 마음일 뿐입니다. 인(仁)이고 충성이고 신의고 어짊이고 효이고 모두 그때그때 사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이 발현되어 나온 것뿐이니 세부적인 절목에 집착하거나 얽매이면서 스트레스 받을 것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내 마음을 다하면 될 뿐이지요. 심즉리니까요. 사적 욕망을 물리치고 내 본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매사에 비추어내면 절로 효와 충, 신과 인을 구현할 수 있으며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가령 여름에는 저절로 시원하게 해드릴 방법을 찾을 것이며 겨울에는 저절로 따듯하게 해드릴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심외무사(心外無事) 즉, 마음 밖에 일없고 심외무리(心外無理) 즉, 마음 밖에 다른 진리 없습니다. 오직 내 마음 안에서 구하면 됩니다. 이쯤 되면 심즉리는 충분히 이해가 가셨을 겁니다.

맹자는 성선을 말했지요. 즉 인간 본성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맹자는 인간에게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양능(良能)과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양지(良知)란 게 그것입니다. 각각 선천적인 도덕 원동력과 선천적인 도덕 인식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왕양명은 이 둘을 합쳐서 양지(良知)라고 했습니다. 왕양명답게 참 화끈한데요. 마음은 자율적으로 시비, 호오판단을 할 수 있고 이치를 드러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양지인 것이죠. 마음이 양지이고 인간은 모두 마음이란 게 있는데 그 양지란 것은 누구든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다하면 신분과 학력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든 도덕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인데 성선을 말하며 인간의 긍정성을 말한 맹자의 입장을 더 크게 밀고 나간 것이죠. 그래서 맹자를 계승해 강한 도덕주체, 거대자아를 확립하려고 한 사람이라고 많이들 말합니다. 맹자의 입장을 계승한 사람이고 그걸 극단으로 추구한 사람이 맞습니다. 정말 맹자는 왕양명의 제1 연관검색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요 전 맹자보다는 공자를 우선 이야기하고 싶네요.

 

“어짊이란 게 멀리 있느냐. 내가 하고자 한다면 곧 인은 이르는 것이다.” 술이편 30장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게 아니다.” 위령공편29장

인간의 긍정성을 가장 먼저 말한 사람,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 모두가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 호학과 위기지학을 말하면서 대상화되지 않는 공부, 수단에 한정하지 않고 삶 그 자체이며 즐거운 일상이 되는 학문을 말한 사람. 그런 사람이 공자인데요. 왕양명을 말할 때는 바로 공자를 먼저 말해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인간 마음만을 긍정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맹자와만 연관 짓는 것은 왕양명의 문제의식을 너무도 좁게 이해하는 것인데 맹자보다는 공자와 더 많이 연관되고 공자적 문제의식을 밀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공자와 왕양명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공자 이전에 덕(德)이란 것은 주로 지배계층이 쌓아야 할 것이었고 학문은 가문 내에서 비전(祕傳)의 형태로 많이 전수되었으며 군자라는 것은 철저히 신분, 혈통적인 의미였지요. 군(君)의 자(子)는 말 그대로 임금의 아들들, 요샛말로 하면 금수저, 통치계층이란 의미였는데 그것을 공자는 도덕 수양의 맥락으로 재해석하면서 누구든 열심히 공부를 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유교무류(有教無類)라고 하면서 배움의 문을 누구에게든 활짝 열어놓았는데요. 사실 왕양명의 심즉리와 양지라는 것도 사실 어쩌면 공자적 문제의식의 부활이며 계승일지도 모릅니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성인이다.”

 

주희는 진리에 진입장벽을 높게 쳐놓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성즉리는 진리를 저위 구름 위에 올려놓았고 다분히 신분 차별적 요소가 있으며 그가 말했던 규범은 당위로서만 제시되고 타율 도덕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왕양명은 주희가 구름 위로 올려놓은 진리를 땅 위로 가지고 내려와 누구든 접근이 가능하고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놓았지요. 왕양명은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리가 있다고 했고 더 세게 나아가 저잣거리의 모든 사람이 요순이라고 했는데 주희로 인해 공자적 전통에서 다소 벗어난 유교의 가르침을 다시 공자에게로 돌려놓은 셈이라 할 수 있지요. 누구에게나 학문의 문호를 열어놓았고 누구든 군자가 될 수 있다고 공자는 말했는데 왕양명은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쳤고 누구든 요순이라고 했습니다. 전 그래서 왕양명을 논하고 이야기할 때 공자의 제자임을 우선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텍스트 전습록을 보면 더욱 공자와 비슷한 점이 보입니다.

 

논어와 전습록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고 절실히 물으며 가까이에서 생각을 벼린다(子夏曰 :「博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矣).”

 

주희의 텍스트 근사록(近思錄)이 바로 자장편 6장의 말에서 나왔다면 왕양명의 텍스트 전습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사항으로 날 반성한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다했는가? 벗과 사귈 때 믿음이 있었는가? 스승이 전해준 것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吾日三省吾, 為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傳不習乎)? 여기서 바로 전습록이란 텍스트의 이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학이편 3장 이 증자에 말에서 기원한 것인데 전습록의 주인공은 왕양명이지만 전습록의 저자는 왕양명이 아닙니다. 그 책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제자들과의 공동 저작이지요. 전(傳) 전해주려 애쓰는 스승과 역시나 습(習), 익히려 애쓰는 제자들 간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어록집이 바로 왕양명의 전습록인데 논어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논어가 공자의 일방적인 가르침이고 그 가르침을 기록한 책인가요? 아니지요. 말 그대로 논어(論語)는 논(論)하고 어(語)한 것 아닙니까. 어(語)는 단순히 말하다가 아니라 답하다, 즉 reply의 뉘앙스가 있다고 했는데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논하고 그랬던 공자학단 학문공동체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게 논어지요. 논어라는 공동저작물의 원조는 요샛말로 하면 리얼리티쇼라고 할 정도로 독보적인 사실성이 보이는 고전인데요, 전습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장면이 웹툰의 한 컷 같기도 하고 무대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와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제자들이 단순히 제자가 아니라 등장인물 같고 정해진 역할과 부여받은 캐릭터가 있는 배우들 같은데 전습록도 그러합니다. 전습록도 보면 제자들의 존재감이 대단하지요. 주희 같은 경우 근사록과 주자어류를 보면 제자들과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주자의 권위가 너무 강하다 보니 제자들의 색과 개성이 안 보입니다. 제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스승에게 이것저것 중구난방식으로 묻기도 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없고 사람 냄새가 안 나는데, 전습록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생과 학생이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동체의 어록집이 전습록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선생과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진하게 드러날 수밖에요.

 

 

만일 문왕이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51조목)

공자께서 곡을 하신 날에는 왜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나요?

대학과 중용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무엇인가요?

맹자의 중(中)을 잡되 헤아림이 없다면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도는 하나일 뿐이지만 옛사람이 도를 논한 것은 종종 같지 않습니다. 도를 구하는데도 어떤 요점이 있나요?

어떤 사람이 밤에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지적이고 철학적인 토론, 역사적 주요인물에 대한 논평, 무거운 학문적 주제. 공인된 유가경전 자구에 대한 질문만이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 개인적인 고민, 삶의 현장성이 보이는데 정말 별걸 다 묻고 별걸 다 대답하지요.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부대끼는 교육현장의 느낌이 나는데 그 장면을 하나하나 뽑아보노라면 왕양명의 모습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면모가 있습니다. 바로 상담가로서의 면모입니다. 상당히 카리스마 넘치는 상담가로서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상담이란 것, 상담가로서의 역할은 교육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실 공자도 상담가로서 풍모가 상당한 사람인데 다음 시간엔 그와 제자들 간의 문답을 보면서 상담가 왕양명 이야기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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