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사의 고백, “고교학점제 2019년 시행?.. 학교 현실 몰라도 너무 몰라”
어느 교사의 고백, “고교학점제 2019년 시행?.. 학교 현실 몰라도 너무 몰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7.12.05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사 충원 시급.. 과목 쏠림땐 선택제 유명무실 우려

“교사도 모르고 학생도 모르고 처음엔 몹시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래도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살리는 좋은 제도라는 생각에서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현장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완할 점이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교사들 업무 부담이 많고 자칫하다간 교육대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로 선정돼 올 1년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서울 A고등학교 B교사는 4일 <에듀프레스>와 만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학생들의 미래가 걸려있는 교육정책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문재인 교육의 대표 브랜드로 꼽히는 고교학점제는 오는 2022년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부터 개방형 교육과정을 실시 하려는것도 고교학점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서다.

학생도 모르고 교사도 헷갈리는 교육과정 어떡하나..

“학생들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교육과정이 뭔지, 필수이수단위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교육과정 편성표를 처음 받아본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어요. 솔직히 교사들도 교육과정은 완전히 알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매일 교직원 회의를 하다시피 했어요. 연수도 많이 하고요.”

B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왜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선 듯 배울 과목을 고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사들이 직접 나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막상 수강신청을 받자 과목쏠림은 물론 100여개 이르는 과목개설이 요구되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수학과 같은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고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사회나 과학영역에서는 선택과목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이 나와 조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학생들을 설득해 겨우 교사들과 수급을 맞춰 학급을 편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간표였다. 학교 자체적으로 개발한 컴퓨터 시간표 프로그램 덕에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만약 교사들이 수기로 시간표를 짜야 했다면 당장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시간표는 난제중의 난제였다.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준비돼 다행 있었지만 종전처럼 시간표를 짰다가는 난리가 날겁니다. 어렵사리 시간표를 만들었다 해도 그것이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을 거고요.” B교사는 “시간표야 말로 교육부나 교육청이 나서서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보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사 업무부담 두배로 늘어... 교육당국 안일한 인식도 문제

교사들의 업무 부담도 크게 늘었다. B교사는 단순히 수업만 계산해도 두 배가 늘어났다며 여기에 부수적인 행정업무까지 계산하면 견디기 힘들 수준에 이른다고 털어놨다. 예컨대 5단위 ‘국어’를 학교지정 2단위, 학생선택 3단위로 각각 편성했다면 담당교사의 수업부담은 가르치는 과목이 두 개가 돼 산술적으로 두 배가 된다는 계산이다.

가르치는 정원은 150명인데 실제로 배우는 학생은 300명이 되는 셈이다. 학교 지정 과목과 학생 선택 과목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2학년과 3학년 등 동시에 담당하는 교사는 부담 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수업준비와 교재연구, 평가에 이르기까지 고교학점제는 교사들에게 상상 이상의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데 교육당국은 이 부분을 쉽게 여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평가는 예민합니다. 대학입시가 걸려 있으니 학생들은 단 1점에도 사생결단이죠. 고교선택제로 업무 강도는 두 배 이상로 높아졌는데 수행평가, 과정중심 평가 등등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요. 기존 인력으로는 어림없습니다.”

평가방식이 상대평가인 탓에 교과목 선택이 정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는 것도 풀어야할 과제다. 실제로 한서고 시범운영과정에서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찾거나 내신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선택이 쏠렸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과목을 일반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수강신청 결과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교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유·불리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현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고교선택제는 유명무실해 질 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고교생들의 교과 선택에서 또래집단의 영향력은 두드러졌다고 한다. 교과목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은 친구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학생들의 과목선택이 일견 교사에 대한 평가로 비춰져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영,수 담당교사는 그래도 괜찮지만 한 두 명의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사는 능력과 상관없이 학생들 선호에 따른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교사의 수업시수를 줄이는 대신 다른 교사의 수업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학교 측은 수업시수가 줄어든 교사에게 창체활동을 맡기거나 별도의 교육활동을 신설하는 고육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학생 지원자가 없어 방과후학교 수업이 폐강하는 경우처럼 앞으로는 정규교육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싶어요. 사립학교는 교사들이 고정돼 있어 위험부담이 더 크고요. 공립학교도 교원 전보 등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B교사는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교과교사들의 위기감과 자괴감은 매우 클 것으로 내다봤다.

준비안된 고교학점제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그는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부터 개방형 교육과정을 전면실시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공부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단 한차례 예행연습도 없이 모든 학교에 적용하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조급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생선택제 한번 인해보고 단박에 전면 실시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조만간 인근 학교 교사들과 이문제로 모임을 갖는데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부가 강사 인력풀을 확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B교사는 썩 미덥지 못한 눈치다. “강사 구하기가 쉬운 줄 아세요? 정작 사람을 쓰려고 하면 없어요. 학교들이 얼마나 애를 먹는데요. 그나마 서울은 견딜 만하겠지만 지방은 정말 힘들 겁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강사들에게 시험출제와 채점 등 평가과정을 맡겨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분들이 한 시간에 1만7000원의 수당을 받아요. 그런데 이것은 수업에 대한 댓가이지 평가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수업을 했으니까 평가도 당신 책임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논리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고교학점제를 시범운영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녀의 진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긍정적인 효과로 평가했다. 학생들 역시 진로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에게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을 재미있게 공부했다는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그런 바람을 고교학점제가 통해 어느 정도 구현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능성과 방향을 믿고 노력하면 보람도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교사의 기대처럼 고교학점제가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고교 교육 변혁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