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전북교육감의 '한국교육 희망 만들기'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한국교육 희망 만들기'
  • 에듀프레스
  • 승인 2015.12.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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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을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신뢰의 위기, 아포리아(Aporia)의 시대를 얘기합니다. 특히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학교붕괴론과 신자유주의 교육이념과 맞물려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1995년 5·31교육개혁 이후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하는 교육 페러다임으로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 따른 교육정책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교육시장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시장 개방, 자립형사립고 우열반 교육과정, 교원성과급 등 경쟁주의 교육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대학서열체제,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을 더욱 고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격화시켰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헌법상의 법치국가원칙, 국회입법의 원칙마저도 유린하는 일제고사, 교원평가 등 경쟁주의 정책들이 교육을 점령하였고, 부유층을 위한 자립형 사립고는 고교평준화의 기본 틀을 붕괴시켰습니다. 경쟁과 수월성 추구가 교육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았으며, 차별주의로 인해 교육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교육이 오히려 계층이동을 불가능하도록 사다리를 설치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시키고 타인을 적대와 승리의 대상으로 삼는 비정한 인간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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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은 교육자들이 아니라 대학의 입시정책과 수능시험이 좌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규수업 외에도 ‘방과후학교’, 각종 ‘학원’ 등으로 전전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공부를 하는 학생들,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PISA)성적은 높지만 청소년들의 학습 흥미도나 행복 지수는 가장 낮은 나라라는 부끄러운 진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해마다 60,000여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한 해 2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현재가 이렇게 불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6.4지방선거에서는 13명의 ‘속칭’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이라는 프레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교육에서 진보나 보수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라는 근본적 의구심 때문입니다. 굳이 교육에서 이데올로기를 찾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 아이들’이리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모를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학교의 명예를 위해 태어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은 한 아이 한 아이의 인격의 성장을 온 천하의 이익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전성은, 2011:192) ‘왜 학교는 불행한가?

 

 한국교육의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희망은 신뢰의 토양에서 싹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 자체가 희망의 동의어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교육에서는 신뢰가 무너지면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믿어야 희망이 생기는 것처럼 교사가 학생을, 학생이 교사를 믿어야만 희망이 생깁니다. 모든 관계에서 사람은 기능적이고 기계적 존재가 아닌 의식적인 존재입니다. 그 점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출발점이자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교육정책을 만드는 것도, 교육의 주체도 모두 사람입니다. 사람이 길이고 희망입니다.

 

한국교육의 첫 번째 희망은 교육주체의 자발적 의지에 터잡아 생성된 ‘혁신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북은 2013년부터 혁신학교의 비전을 ‘혁신학교를 넘어 학교혁신으로’라고 정했습니다. 혁신학교를 통해 거둔 성과와 가치들을 일반학교에 확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와 목표들은 특별한 지원 없이 일반적 조건하에서도 가능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혁신학교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의 가치와 목표들을 학교 안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혁신학교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입시교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고등학교에 어떻게 혁신학교 문화를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전주에 있는 혁신학교인 신흥고등학교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서 고등학교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전라북도 혁신학교에 담긴 철학, 즉 자발성, 창조성, 지역성, 공공성을 구현하는 길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전북교육의 비전인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 길이 어떻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배우면서 행복한가, 교사들이 가르치면서 정말 보람을 느끼는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 행복한가, 이 물음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학교는 틀림없이 혁신학교입니다.

전라북도 혁신학교의 규범적 토대는 헌법이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존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알버트 벤 다이시(Albert Venn Dicey)는  “우리의 헌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혁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도 남한산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완주 삼우초도 그렇고 정읍 수곡초나 임실대리초 또한 사전에 기획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교육주체의 자발성을 통해 스스로 생성되어 나온 학교입니다. 자연스럽게 물길이 열리면서 생성된 전국의 혁신학교를 통해 교육의 희망이 푸른 잎을 틔우고 있습니다.

 

교육이 희망이 되기 위한 조건

대한민국 교육에서 대학입시는 모든 교육과정을 지배합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목적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목적 모두 서열이 좋은 대학과 취업이 쉬운 인기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것입니다. 초·중등교육은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국·영·수 입시과목을 중심으로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과도한 입시교육을 통해 인성발달보다는 점수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점점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요동쳐 왔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대한민국 교육의 고질병입니다. 헌법은 국가권력행사의 예측가능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헌법 제96조). 국가권력행사의 예측가능성의 원칙은 교육정책의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을 바라보는 정책의 구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날림 공사를 하듯이 설익은 교육정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을 따라가다 보면 학교는 늘 분주하고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하는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수립하는 과정에서 권력자들은 그 어느 분야보다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며,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균형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입니다.

최근 사회 각계각층에서 교육의 미래와 희망을 논의하는 자리가 많아졌습니다.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교육자치의 실질적 보장, 경쟁교육에서 협력교육 체제로 전환하는 공교육 정상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교육전문가와 교육활동가 그리고 한국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이 교육을 바꾸는 새 힘과 지혜를 모으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한국교육의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한 조건 4가지를 제안합니다.

1. 교육의 정치화 배제

교육활동은 그 자체가 가치 지향적 활동입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구성하는 내용은 교육의 정치적 무당파성(無黨派性), 교원의 정치적 중립, 교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교육에 대한 정치적 압력 배제, 교육의 정치 불간섭 등입니다. 이와 같은 헌법상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법률조항들이 교육기본법 등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교육에서 정치를 배제하라는 것은 헌법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육의 ‘전문성’을 법률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장하라는 헌법의 명령은 교육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에 관하여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경우 교육의 수준 저하와 혼란은 물론, 교육의 정치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교육은 교육 전문가의 손에

교과서의 도덕성 회복을 위하여 교과서의 수준을 낮추고 교육과정의 분량을 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수준을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는 수준으로 적정화함으로써, 과도한 학습 부담을 경감하고 학생들의 건강하고 균형 있는 심신 발달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교과서는 적정한 수준의 내용을 적정한 양만큼 집어넣어야 합니다. ‘교과서 수준 및 분량의 적정성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백을 남겨놔야 합니다. 그 여백에서 아이들의 지적 활동이 일어나고 교사들의 교수 활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 모두 문제입니다. 교과서 수준이 너무 어렵고 양이 너무 많습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 현상은 가중됩니다. 전형적인 예로 우리나라 중3 수학교과서를 미국에 갖다 놓으면 고3 수학교과서가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학습한 수학 지식이 수능시험이 끝나면 다 증발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삶과, 실생활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공식 외우기, 문제풀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의 수준을 높이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교육부는 틈만 나면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세우지만, 진실은 교육부가 사교육비 발생과 증대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과서편성과 수능시험 출제 위원은 대학교수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대학교수는 똑같은 내용도 어렵게 쓰면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더하여 몇몇 대학들이 출제하는 논술 문제는 과연 출제위원 본인은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난도의 문제입니다.

 

어려운 교과서와 시험문제는 아이들의 줄세우기에 매우 뛰어난 도구입니다. 교과서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수가 교과서 편성 및 수능시험 출제에서 손을 떼고 보통교육의 전문가이자 주체인 교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교육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가 교과서를 만들고 수능시험을 출제해야 보통교육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2014년 9월 11일부터 효력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범위를 벗어난 수능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법적 제재를 가하는 법률조항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문자와 숫자 쓰기를 하는 사례들을 형사처벌하는 법률조항도 필요합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제도권 교육시스템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홈스쿨링, 대안학교, 독학, 검정고시 등 교육형태에 대한 입체적이고 다양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공교육의 정상화가 그 답이라고 봅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제도권 밖의 교육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면, 학부모들의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3.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교육은 대다수 국민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분야입니다. 또한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따라서 전문성이 없고 경험이 없어 현장적합성이 취약한 교육부 관료들에게 더 이상 우리의 교육을 맡겨놓아서는 안 됩니다. 각계각층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공공성을 바탕으로 교육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해체하고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교육부에는 약 700여명의 관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60여명 정도가 현장교원 출신들이고, 나머지는 일반직 공무원들입니다. 일반직 공무원들은 주로 실무를 담당하는 하위직 공무원과 정책을 입안하고 부서를 총괄하는 고위직 공무원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고위직 공무원들이 교육정책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이 행정고시 출신들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은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교육정책에는 본질적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책이 바뀌지 않는 비밀의 열쇠는 교육 관료제가 쥐고 있습니다.

교육만큼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일관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범국민적 교육 합의기구 설치 요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국가 교육목표와 정책기조는 초당파적‧초정권적 차원에서 설정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계, 지자체, 경제계, 중앙정부, 국회, 시민사회 등 책임 있는 주체들이 모이는 민간독립기구로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매우 절실합니다.

4. 지방교육재정의 확충

최근 지방교육재정이 매우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교육자치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의 확충은 필수조건입니다. 국가주의 교육시대를 넘어 지방의 특성에 맞게 교육을 설계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보다 많은 자율권과 예산을 지원하는 구조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방교육자치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이며, 지방교육자치에 부합하려면,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관계는 ‘최소한의 통일성과 최대한의 자율성’의 관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부의 조직과 권한을 축소하고, 엄청난 규모의 특별교부금을 보통교부금으로 전환하는 등 지방교육자치의 역량과 자율권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이 매우 필요합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그 효력을 발생한 것이 2007년 1월 1일입니다. 하지만 바뀐 것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고, 바뀌지 않은 것은 교육부과 그 관료들의 의식입니다. 국회는 법률로써 지방교육자치를 실시하라고 명령했지만, 교육부는 중앙집권교육을 고집해 온 것입니다. 그 최근의 사례가 바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편성의 책임이 시·도교육청에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은 그 설립인가, 관리·감독의 권한이 보건복지부와 시·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교육기관이나 교육행정기관에 배정하라는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시도교육청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편성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시행령에 의한 법률의 파괴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행령에 의한 법률의 파괴는 곧 헌법위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전북의 경우, 정부의 만 3세∼5세 누리과정의 단계적 확대실시에 따라 누리과정에 투입되는 예산이 급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11년 280억원,  ‘12년 606억원,  ‘13년 951억원 ) 향후 4년간 누리과정에 투입되는 예산과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2017년에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을 감안해 볼 때, 지방교육재정의 여건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고교무상교육 소요재원은 전액 국가부담으로 충당하여야 하며, 고교무상교육과 누리과정 확대 등으로 소요되는 추가 재원확보를 위해 내국세 비율을 현행 20.27% ⇒ 25.27%로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지방교육재정을 열악하게 만드는 교육부의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교부금 사업의 남발이 그것입니다. 교육부는 각종 특별교부금 사업을 만들어서 시·도교육청에 대응 투자를 강제합니다. 그리고 그 대응 투자의 비율을 계속적으로 시·도교육청에 불리하게 조정하다가 일정 시기가 되면 퍼넘기기를 합니다.

그 후 교육부는 또 다른 특별교부금 사업을 만들어 내고, 동일한 형식과 절차를 거쳐 다시 시·도교육청의 재정부담을 악화시킵니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들은 부지기수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대량의 비정규직 발생입니다.

 

 맺는 말

최근 독일 쾰른의 한 김나지움에 재학 중인 17세 여학생이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22개의 독일어 단어로 구성된 글을 트위터에 올린 뒤 격렬한 교육 논쟁이 독일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학교에서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살아 있는 지식을 배울 수 없다는 불만을 내포한 나이나 K(가명)의 문제 제기는 연방교육부와 연방교사연맹에서 란트 정부의 문화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교육정책 담당자들과 언론·교육계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은 물론 SNS에서도 열띤 찬반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이 기사를 접하며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부러움과 공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앨빈 토플러 또한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학교교육은 사회에 나가면 불필요한 지식을 쌓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와 사회가 유리되고, 학습과 삶이 동떨어진 교육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삶을 담아내는 교육, 학습과 삶이 끊임없이 조우하는 교육이 될 때 교육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교육에 분명 희망은 있다고 믿습니다. 그 희망의 대표적인 증거는 혁신학교의 확산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대한민국의 교사들입니다. 혁신학교 정책은 교사의 자율성과 자발성, 집단지성을 존중해주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방식입니다. 2009년 경기도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된 혁신학교가 전북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위’에서 답할 차례입니다.

‘위’에서 해야 할 답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교육의 본질이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간섭·타율·통제에 친한 영역이 아니라 독립·자율·지원에 친한 영역입니다.

이제는 교육체제의 개편, 교육의 민주화, 교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자정적인 교육개혁의 물길이 열려야 할 때입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도 “교육은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공교육 강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시어 <대한민국 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고민하시고 토론하시는 여러분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 희망의 전령사이십니다.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 그 희망의 좌표를 만들고 실천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이 토론회가, 지속적인 정례화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위에서 지원을 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부는 교육을 지원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원이 아니라 지원을 빙자한 간섭과 통제를 해 왔습니다. 오늘의 이 토론이 위에서 자발적인 개혁의 물길을 트는 소중한 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봄이 왔습니다. 희망은 희망으로만 머물게 하지 말고 이제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와 열정이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을 생기 있게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인 바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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