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어느 로스쿨 학생의 분노
[교육칼럼] 어느 로스쿨 학생의 분노
  • 에듀프레스
  • 승인 2015.12.26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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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기, 선배, 후배 로스쿨생분들. 저는 서울대학교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광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술

자리에서나 뵐 줄 알았는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착잡한 마

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필이면 비도 추적추적 오는 바람

에, 좋은 날에 여의도에 책이나 들고 와서 공부나 한 번 해볼까

했던 생각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네요. 아쉽게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 봄에 이런 자리를 한 번 경험해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과천이었네요.

저는 당연히 그 때가 아마도 제 로스쿨 생활에서 또는 제 인생에서 마지막 집회

가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이 자리 앞에 서있습니다. 기분이

묘합니다. 이곳은 여러분이 있을 곳도, 제가 있을 곳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학교겠지요. 내년은 3학년이라 부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와주신 3학년 분들에게 큰 고마움을 표

합니다. 서울이 아니라 멀리 지방에서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표합니

다. 지금부터 한 5분 동안, 그냥 친구가 말하는 이야기, 동생, 오빠 또는 형이

말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들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법조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법시험을 쳐야겠다고 생

각했고, 슬슬 준비해볼까 했던 찰나에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군대로 떠났고, 다시 돌아와서 로스쿨 준비를 열

심히 했습니다. 첫 해는 리트를 망쳐서 1년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녀보기도 했습

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지금의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

다. 입학한 이후에 저는 법 공부도 법 공부지만 이 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오늘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사법시험을 치려고 했던 저는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사법시험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여러분께 말씀 드리려는 걸까요. 사실 저는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완벽하

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스쿨 제도는 고작해야 10년이 채 안된 제도입니다.

사법시험의 많은 부분을 보완해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많

습니다. 등록금이 비싸다는 소리도 듣고, 실력이 없다는 소리도 합니다. 억울한

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주변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덕분에 아마 로스

쿨 제도는 계속해서 바뀌어 나갈 겁니다. 지금도 바뀌고 있죠. 7년 동안, 특히

나 학사나 교무분야에서는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

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방통대, 야간 로스쿨에 대한 논의가 등장했고 변호사

시험 성적을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 교수

님들 정원에 대한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정말로 우리가 객관적으로

실력이 부족하다면 로스쿨 재학기간이 1년 정도 늘어날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이 다니는 동안에도 로스쿨은 지속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법시험이 존치되면 개혁의 원동력은

모두 상실될 것입니다. “로스쿨은 이런 게 문제인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답이 “그럼 사시 보면 되겠네. 사시 있잖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로스쿨과 사시가 병존

한다면, 로스쿨은 로스쿨의,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대로의 적폐를 그대로 가진 채

쭉 유지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의 살아생전에는 로퀴니 사시충이니 하

는 어린애 장난 같은 다툼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뿐만 아닙니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자식들도요. 그럴거면 차라리 로스

쿨을 아예 다시 없애고 사법시험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타당합니다. 비록 법조

계에 대한 신뢰수준은 지금처럼 콜럼비아 수준으로 유지되고, 고시낭인의 발생

이라는 문제는 여전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시생도 그러한 주장은 하

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7년 전에,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사법시험이라는 것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것은 그저 법조인을 꿈꿨더니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새에 이미 수저가

모두 도금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비난하고, 그

비난에 있어서 한창 유행하고 있는 수저론을 덮어씌운 것은 굉장히 효율적인 방

법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성취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주시기 바랍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탓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순진하게 공부나

열심히 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 남들에게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했던

얕은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변협이라니요. 당신

들을 꿈꿨던 사람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법을 신뢰하고, 법대로 되리라 믿고

법을 공부하려던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왜 금수저

소리를 듣고 돈으로 자격증을 샀다는 소리를 들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밤샐 때는 더 모르겠고,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를 겁니다.

저희를 매도하고 사법시험이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고시생분들에게 드

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7년을 드렸습니다. 7년이라는 긴 유예기간을 모두

거치신 분들, 또는 이제와 사라질 것이 명백함을 알았음에도 1-2년간 사법시험

을 준비하셨던 분들이 갑작스레 ‘사법시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갖는

신뢰가 보호 가치 있는 신뢰입니까. 아니면 법이 있음을 알고 법을 믿으며 입학

한 우리들, 그리고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신뢰가 보호가치 있

는 신뢰입니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6천명, 리트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이 8천명입니다. 단순히 숫자상으로 비교해도 누구의 신뢰를 보호해야 하는 것

입니까. 지금까지는 무엇을 하시다가,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 저희를 근거 없

이 매도하며 자격증을 돈으로 사려한다고 하십니까. 수능도 본고사로 되돌리실

생각이십니까? 차라리 과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당연한 주장을, 길게 말해야하는 것만큼 곤욕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느끼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옴에도 긴 시간 자리에 앉아서 잡담 들어주

셔서 감사하고, 부디 몸조리 잘하셔서 학교에서 다시 공부하실 수 있도록 건강

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사석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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