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물려줄 수 있는 것과 물려줄 수 없는 것
[교육칼럼] 물려줄 수 있는 것과 물려줄 수 없는 것
  • 에듀프레스
  • 승인 2015.12.26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문】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明心寶鑑』「繼善篇」

【번역문】

사마온공이 말했다. “황금을 쌓아 자손들에게 물려주더라도 자손들이 반드시 모두 간직할 수는 없을 것이요, 책을 쌓아 자손들에게 물려주더라도 자손들이 반드시 다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하니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자손들을 위하는 계책으로 삼음만 못하리라.”

 

사마온공은 북송(北宋)의 대정치가요 문호였던 사마광(司馬光)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거니와 개혁파 왕안석(王安石)에 대항해 구법당(舊法黨)을 이끈 원로이기도 했다. 구법당이란 갑작스런 제도의 개혁보다는 기존의 원리원칙을 제대로 지켜가며 온건한 변화를 추구하던 세력을 이른다. 요즘으로 치자면 합리적 보수에 해당하리라. 어쨌든 신법당(新法黨)을 결성해 맹렬히 개혁에 매진하던 왕안석에 몰려 오랜 세월 낙양(洛陽)에 은거해야 했던 이 인물, 실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던 동시대 최고의 철학자 소옹(邵雍)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소옹은 강절선생(康節先生)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위대한 학자였지만 평생 벼슬을 멀리하고 낙양 인근에서 제자들이나 가르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우주만물의 변화 원리를 수(數)에서 찾은 일종의 수학적 역리학자(易理學者)였다. 머릿속에 달과 태양을 비롯한 무한한 우주의 섭리를 넣고 살던 그에게 세상 정치 싸움 정도는 어린아이 장난질에 불과했으리라. 그런 까닭인지 소옹은 당시의 저명한 정치가 사마광이 이사를 오건말건 관심도 없었고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인연을 맺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몸이 단 쪽은 당연히 사마광이었다. 오랜 노력 끝에 사마광은 소옹을 집에 초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새벽부터 단장하고 집안도 소제한 뒤에 설레는 마음으로 대철학자의 방문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새들이 담장에서 지저귀다 처마 끝으로 옮겨 앉기를 여러 차례 했지만 소옹은 오지 않았다. 어찌 됐을까?

소옹은 끝내 오지 않았다. 소옹은 약속을 까맣게 까먹고 꽃구경하고 있었다. 때는 이제 막 꽃들이 망울지던 초봄. 소옹은 수레를 멈추고 다시 찾아온 봄에 감격하며 그 안에서 우주의 비밀을 엿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사마광인지 뭔지 하는 유명하다는 정치가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사마광은 어땠을까? 사마광은 식어가는 음식을 바라보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시 한 수로 읊조렸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그는 상대의 결례에 분노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는 소옹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변화다 안정이다 하며 정치판에서 싸우던 자신에게 상대가 한 무언의 꾸지람을.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자! 저 한껏 피어나는 꽃들을 보시게! 우주는 영원히 변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변함없이 꽃들을 피워내고 있지 않는가? 난 그대가 싸우는 동안 꽃을 키웠다네. 사람이란 꽃들을!’

위대한 정치가 사마광은 낙양의 조그만 사립학교 교장 소옹에게 퇴짜 맞은 뒤 15년에 걸친 공부 끝에 역저인 『자치통감』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구법당의 지도자 사마광은 잊혔는지 몰라도 역사가 사마광은 불후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어쩌면 이 모두가 꽃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끝내 오지 않았던 소옹의 무언의 가르침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런 게 음덕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음덕이란 말인가? 이제 원문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아무리 적금을 많이 부어도 재물은 언젠가 사라진다. 책을 사서 산처럼 쌓아놓아 봐야 안 읽으면 그만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건 덕(德)이다. 덕은 쌓을수록 커지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색이 바래지지 않는다. 물론 세상엔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적지 않겠지만 덕을 입은 기억은 쉽게 폐기되지 않는 법이다. 심지어 부모가 쌓아놓은 덕은 시간을 타고 자식에게까지 흘러넘친다. 덕을 베푼 분은 사라졌지만 그분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 속에 계속되고 그 기억을 육화한 후손들에게 전이된다. 이보다 더 좋은 보험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덕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베풀어져야 한다. 그래야 음덕이다. 덕이 의기양양하게 여봐란 듯이 베풀어진다면 그건 적선이나 시혜가 된다. 받는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거나 일말의 열등감이라도 갖는다면 어떤 큰 자선도 결국엔 자기과시에 불과하다. 때문에 큰 덕은 은은하고 은밀하게 그늘 속에서 슬쩍 건네지는 것이다. 받은 사람이 무얼 받았는지 의식하지도 못하게 베풀어져야 제대로 된 음덕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며시 전달된 음덕은 당장엔 드러나지 않겠지만 긴 시간을 거쳐 결국엔 드러나게 된다. 음덕의 효험이 자손 대에서야 나타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따라서 음덕의 반대말은 양덕(陽德)이 아니라 악덕이다. 악덕한 사람들의 특징은 조급하다는 것이다. 진정 악덕한 자들은 선행을 가장해 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이다. 당연히 그들도 선행을 베푼다. 하지만 그들의 선행은 당장 눈앞에 드러날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에 한시적이고 변덕스럽다. 심지어 자신이 베푼 덕행에 대해 몇 배의 대가를 요구한다. 이처럼 코앞에서 후과(後果)를 바라고 행해지는 덕행은 절묘하게 치장된 가짜 선행일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그것을 통해 누군가를 얽매려는 술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덕을 베풀어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가 베풀었던 덕이 무엇이 되어 되돌아올지 우린 당장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도 먼 예전에 우리가 했던 어떤 착한 행동의 결과임을 잊어선 안 된다. 만약 우리가 그럴만한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조상들이 만든 음덕을 누리는 중이다. 결국 오늘 하루를 소중히 아껴가며 음덕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옹이 오지 않았던 낙양의 어느 봄날로 돌아가 보자. 사마광은 씁쓸하게 웃으며 서재로 들어갔을 것이다. 낙양 변두리의 시골 선생에게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러다가 사마광은 빙그레 웃었을 성싶다. 소옹 선생이 봄꽃 나들이 떠났다는 전갈을 받고 그의 가슴은 오히려 시원하게 뚫렸을 것이다. 그 누가 감히 사마광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그건 천하의 소옹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소옹은 오지 않는 행동으로 사마광을 깨우쳐준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가?

이렇게 말하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큰 음덕을 베푸는 분들이 바로 교육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하니 백년 앞을 내다보며 교육으로 평생을 사시는 분들의 자손들은 어마어마한 음덕의 혜택을 예약한 자들이 아닌가? 새삼 가슴을 쭉 펴고 첫 꽃 망울지는 캠퍼스로 산책이나 나가야겠다.

윤채근 단국대교수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