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하는 혁신이 아닌 ‘혁신할 수 있는 교육체제’가 필요
말로 하는 혁신이 아닌 ‘혁신할 수 있는 교육체제’가 필요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11.01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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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양준모 연세대학교 교수

 

 

인성도 중요하지만, 학력도 중요하다. 또한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교육에 있어서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혁신학교’가 화두에 올랐다.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인성을 강조하는 정책에는 찬성하지만 교육은 이념적 접근이 돼서는 안된다. 교육의 혁신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이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고 학군별로 추첨에 의해서 학교가 배정되던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던 터라, 가고 싶은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한 반에서 모아놓은 교실 안 사정은 엉망이었다. 교과서 읽는 것조차 문제가 있는 친구,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노는 것에 더 열심인 친구….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하면서 ‘문제 하나 틀리면 체벌이 가해지는 식’의 교육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과외라도 하는 학생들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학교와 학부모들 간의 소통도 없었다. 한 학부모는 자기 아들이 실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고는 졸업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일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동의할 수 없는 교육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까? 대학에서 20여 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복잡한 입시제도와 평준화 교육으로 학생들의 학력이 나아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또한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첫애와 둘째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까지 과거 내가 다니던 교실 속 풍경과 달라진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천편일률적인 학교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점점 무너졌고, 이로 인해 사교육에 매달리게 되면서 사교육비 부담은 늘어났다. 대학 입시제도 또한 너무 복잡해져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 것도 없었다. 게다가 학교 교육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함에도, 자기 소개서와 논술 시험 등으로 대학 입시를 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창의・인성을 강조하려면 대학 입시만 바꿀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 더 나아가 학교 교육이 더 다양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자존감・신뢰를 주는 학교

유학시절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새플리 교수에게 배울 기회가 있었다. 저명한 학자였지만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식 인사로 고개 숙여 인사하던 새플리 교수는 명문 사립 기숙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 학교는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학생 대 교사의 비율은 5대 1정도이다. 교육은 토론식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교과 외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학생에겐 행복을, 교사에겐 자존감을, 학부모에겐 신뢰를 주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새플리 교수와 같은 노벨상 수상 학자가 배출되기를 기대하면서 이 학교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행·재정의 자율성이다. 좋은 교사와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교행정의 자율성과 재정적 뒷받침 없이 우수한 학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학부모가 내야 할 돈은 연간 5천만 원. 그야말로 귀족학교라고 할 수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만큼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학생을 위한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둘째, 양질의 교사진이다. 대부분 교사들이 석사학위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해당분야에는 학과장이 있어 각 분야 교사들을 지도한다. 교사들끼리 느끼는 동료 간 압력도 대단해서 교사들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셋째, 학생 중심의 교육체제 구축이다. 학생들이 학습능력에 따라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학생의 눈높이에서 맞춤형 학업모델을 만들어 준다.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교육에 있어서는 정의’가 아닐까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인성도 중요하지만, 학력도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각자의 이념적 신념에 따라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혁신학교’가 그것이다. 그러나 말로 혁신하기보다 혁신할 수 있는 교육체제를 만들어야만 학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교육은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질 새로운 교육감들에게 부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학교, 학부모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학교,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학교다 더 많이 생기는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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