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 칼럼]여유를 선택하세요
[조벽 칼럼]여유를 선택하세요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7.05.25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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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20% 타임’이 혁신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2000년대 초부터 구글은 직원들이 해야 하는 일에 80% 시간을 할애하고 남은 20%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직원이 각자의 관심사를 추구하고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여유와 자유에서 지메일과 같은 혁신 제품이 개발되었습니다.

많은 회사가 ‘20% 타임’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하지만 선뜻 실천하지 못합니다. 여유는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정말로 창의력의 원천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굴이 세계 최고 회사로 거듭나고 젊은이들이 취직하고 싶은 기업 1순위가 된 이유는 바로 타사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스카치테이프를 만드는 3M 회사의 ‘15% 룰’을 모방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가정용품과 사무용품을 생산하는 3M이라는 글로벌 기업은 본래 광산업과 제조업을 하는 미국 미네소타 주의 자그마한 동네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모든 직원에게 15% 시간을 맘껏 사용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개인적 관심사를 추구하고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따지거나 직원평가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유래 없는 규칙을 시도하였습니다. ‘15% 룰’의 결과물 중 하나가 세계인이 일하고 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고 평가 받는 포스트-잇입니다.

한때 3M은 새로 개발한 풀이 잘 붙지 않아 고민하였습니다. 실패작인 신제품은 창고에 폐기 처분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직원이 실패작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오히려 단점을 장점으로 부각시켜 쉽게 붙였다 뗄 수 있는 신제품으로 개발하였습니다. 그 후로 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미네소타 광산과 제조)의 약자였던 3M이 Mistake, Magic, Money(실수, 마술, 돈)의 약자로 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실수를 허용했더니 마술같이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5%의 여유는 기업에만 해당되는 규칙이 아닙니다. 개인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 유학길에 오를 때에 아버지께서 당부하셨습니다. 본인의 실력보다 10~20% 덜 써도 되는 곳에서 공부하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버지의 당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 실력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교와 직장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웬 하향 지원하란 말씀인가! 왜 미리 겁먹고 패배주의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인가? 내가 너무 힘들어 할까봐 걱정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만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의적 삶만이 진정으로 내 삶입니다. 여유는 장기전을 치룰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인 것입니다.

아찔합니다. 만약 제가 지도교수의 권유대로 프린스턴 대학에 취직했더라면 십중팔구 중도탈락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프린스턴 대에 초빙교수로 한 학기 있어보니까 제 실력 100%를 발휘해도 모자랄 것 같은 곳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았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타인의 삼고초려에 감동을 받아서 높은 직책을 수락했더라면 100% 후회했을 것임도 압니다. 저는 15%의 여유가 없는 곳에서는 제가 지닌 능력의 85%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매일 불안감과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여유는 빈둥거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여유는 허, 무, 공, 빔이어서 희미하지만 묘합니다. 새로움의 공작실이며 공감이 존재하는 허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저 최고의 대학과 직장을 쫓지 마세요. 헉헉거리며 쪼들리며 짓눌려 살지 마세요. 대학과 직장을 죽은 듯이 공부하고 노력한 보상으로 간주하지 마세요. 그리해봤자 또다시 죽은 듯이 살아야 하니까요.

여유는 생기지 않습니다. 여유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15% 여유를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택하세요. 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조벽, 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전 미시간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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