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진단]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
[교육진단]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05.22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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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태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연구소장)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여기서 ‘새 정부’는 정부의 수장이 바뀌었다는 통상적 의미와 함께 지난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1,500만 촛불 민심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집단이 집권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요즘 여러 언론 매체들에 나타나는 기사들은 많은 국민들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신선한 이미지를 담은 대통령의 한 마디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회자되고 있다. 오래도록 무기력했던 주가까지 사상 최고치 갱신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 대한 기대가 이제 현실적인 희망으로 전화(轉化)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새 정부가 막 출범한 현시점에서 여러 기대와 희망들이 오래지 않아 현실화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역대 어느 정부든 출범 초기에는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껏 기대를 담은 덕담과 칭찬이 무성하지 않았었던가.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교육 분야 대통령 선거 공약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대와 희망을 갖도록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히 다양한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숙원 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살짝 비껴 보면 그런 공약들이 새로운 시대의 교육을 만드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공약들로는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까지 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쓰는 취지가 여기에 있다.
아래에서는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분야 선거 공약을 바탕으로 새 정부가 펼칠 교육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본 다음, 그것이 만들어 낼 우리 교육의 전체적인 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명해볼 것이다. 뒤에 가서는 새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들을 몇 가지 제시하려고 한다.
 
 
공약을 통해 본 새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
 
  우선, 문대통령의 교육공약을 전체적으로 일별해보자.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라는 제목을 단 문대통령의 교육 공약은 1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56개 과제 및 108 개의 세부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내용이 대부분 이와 겹치기는 하나 이와는 별개로 유아, 청소년, 대학·청년을 위한 공약이 별도의 꼭지로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33개 과제에 43개의 세부과제가 제시되어 있다. 
13개 영역의 내용을 보면 주로 유초중등교육의 개선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개 영역 중 절반 이상(1~5, 7~9)이 여기에 해당된다. 유아·아동과 청소년, 청년을 위한 공약 유인물을 따로 만든 것도 이것을 더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룬 것은 교육복지 확충이다. 대표적인 영역은 1과 2(유아), 그리고 9와 11로서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기회 확대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만일 교육복지의 내용을 학습 부진아 지원까지로 확대하면 5번까지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반면, 고등교육의 변화를 위한 공약은 12번 하나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핵심적인 내용은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과 공영형 사립대 육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들을 고려하면 실제 내용은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학서열 체제 완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초중등교육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평생교육에 관한 공약은 단 한마디도 없다. 유일한 언급은 13번 교육 거버넌스 개편과 관련하여 초중등교육에 관한 업무나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교육과 평생교육, 직업교육에 전념하겠다는 정도이다. 교육공약 내용이 주로 시도교육청에 이관할 초중등교육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중앙정부가 전념하겠다는 고등교육이나 평생교육에 관한 정책 방안이 이처럼 빈약하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약 내용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대다수의 과제와 세부과제들이 ‘지원 확대’나 ‘여건 개선’, ‘처우 개선’과 같이 예산 지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들이었다. 여기서 문대통령의 교육 공약은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연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여러 층위의 교육적 약자들이 제기한 민원성 요구들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또 대부분의 공약 과제와 세부과제들이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 온 것들을 ‘확대’, ‘개선’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러 후보들이 언급했던 내용들의 재탕 삼탕인 셈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기초학력보장제 추진’, ‘교사 행정업무 경감’,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 ‘사회취약계층 지원 확대’처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채 선언적으로 진술된 과제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선거 공야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촉박한 시일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종합하고 절충하다 보면 그렇게밖에 더 되겠나. 이제 집권을 했으니 교육부 수장과 참모진들이 새롭게 잘 하면 되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아량’으로 지금까지 역대 집권 세력을 너그럽게 보아 주었었다. 그러나 촛불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업고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의 공약 치고는 너무나 밋밋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한 마디로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이전 정부들과 유사한 양상을 띨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새로운 내용들도 있는데 왜 그렇게밖에 예상할 수 없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새롭다고 할 만한 내용들을 살펴보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은 10번과 13번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교육체제를 만들겠다.’는 10번 과제들을 보면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지식정보지능사회에 맞는 미래형 학교환경 조성’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단기학위(한국형 Nano-Degree) 운영’을 제외하면 고교 단계의 진로·직업교육과 전문대학 지원 확대가 주된 내용이다. 소프트웨어 교육 강화는 이전부터 필요성이 강조되어 온 것이지만 단기 학위제도는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13번의 교육 거버넌스 개편은 절실한 개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초중등교육 업무를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교육부의 기능 개편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과제의 의미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많은 논자들이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국가교육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적한 바 있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앙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공약의 내용이 주로 초중등교육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이 과제의 진정성이나 실현가능성은 현재로서 매우 의심스럽다. 요컨대, 공약 내용만으로 보면 새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각종 숙원사업들도 대부분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나 기득권자들의 반발로 별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예상된다.
 
긍정적인 기대 요소들
 
  그렇다고 새 정부가 추진할 교육정책들 중에 긍정적으로 기대할 만한 것이 전혀 없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몇 가지는 약속대로 추진될 경우 어느 정도 우리 교육현실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수능 절대평가제 추진이다. 5지 선다형으로 치러지는 현행 수능은 현재 학교교육을 찍기 고르기 위주의 시험 연습장으로 만든다는 점과 미세한 점수 차이로 인생의 희비가 갈리는 상대평가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개혁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의 공약은 이 중에서 후자에 대한 개선책을 담고 있는 셈이다. 논·서술 평가 방식의 도입으로 전자까지 개선하기를 바라지만, 우선 아쉬운 대로 이것만이라도 확실하게 시행된다면 학교 현장에 어느 정도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절대평가제 도입’이 아니라 ‘추진’이라는 표현에서 추진 의지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이 남는다. 아울러 들리는 말에 따르면 9단계 절대평가제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절대평가제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단계까지는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진로·적성 맞춤형 고교학점제(DIY형 교육) 추진이다. 내용을 보면, 고교 필수교과를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을 확대하여 이를 학점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점 연계를 통하여 특성화고교와 대안학교 간 상호 학생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나아가 이러한 선택은 단계적으로 학교 연합형, 지역사회 연계형, 온라인 기반형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일 이 방안대로 실행된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학교와 학교 밖 경계가 엷어져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흡해 보이는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도 학생 선택 폭의 확대는 교사 노동력의 유연성과 직결되어야 한다. 강사 등의 비정규직으로 피해갈 수는 있겠지만, 이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공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다음으로 어떤 과목까지 선택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선택 당하지 못하는 교사들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교련이나 제2외국어 사례에서 보았듯이 있는 교사를 내보낼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들에게 강제로 그 과목을 선택하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점제는 학년제보다는 학기제와 친화성이 높고 궁극적으로는 무학년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점을 십분 고려해야 한다. 제도적 절충 방안의 모색과 함께 현재의 학년에 따른 학생 서열 문화, 학년제에 익숙한 교사의 인식과 태도 변화도 세심하게 점검해야 할 요소들이다.
  셋째, 교장 공모제 확대이다. 이것은 현재 실시되고 있는 교장 자격증 소지자 대상의 공모가 아니라 이른바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말한다. 이 제도는 본래 참여정부에서 도입, 시행되었고 이미 적지 않은 수의 평교사들이 이 제도를 통해 교장으로 임용되어 혁신적인 학교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공약대로 이러한 공모제가 확대된다면 현행 승진제로 인한 교단의 불합리한 관행들이 빠르게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역량 있는 신임 교장을 발굴할 수 있는 방안 마련, 현행 승진제의 과감한 축소나 폐지와 함께, 교사의 양성과 임용, 전보 제도 등 교원제도 전반의 개혁이 수반될 때 제대로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혁신학교의 전국 확대이다. 이것은 현재 혁신학교가 일부 시도에서만 운영되고 있음을 염두에 둔 공약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보수적인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혁신학교가 운영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교육부 장관으로 유력시되고 있는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도 강조한 것인 만큼 꽤 강도 있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정책은 해결되기 어려운 딜레마를 안고 있다. 새 정부는 초중등교육 업무를 대부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평생·직업교육 업무에 전념한다고 공약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도 현재 수많은 교육관계법 시행령 내용을 손질하고 그 시행 주체를 장관에서 교육감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장관은 시도교육감들이 추진하는 일에 대하여 간섭이나 강제를 할 수 없다. 교육부 장관이 혁신학교를 하지 않으려는 일부 보수 교육감에 대해서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이 원하지 않는 교직의 지방직화나 지역별 교육격차를 해결하는 일도 매우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려되는 요소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약이라 해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면 결코 좋은 공약이라고 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공약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는 판단이다. 한 예로 위 표의 5번인 ‘한 아이도 놓치지 않도록 1:1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습니다.’를 보자. 이를 위한 과제로 ‘기초학력 보장제 추진’과 ‘1수업 2교사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과제의 4가지 세부과제들 중 실행과 관련된 것은 학생 면담 의무화와 개인별 학습계획 수립, 학습지원 전문교사 배치 및 학습코칭팀 구성 등이다. 이런 내용으로 기초학력 보장이 될 수 있을까? 이전에도 학교나 교육청에서 비슷한 시도들을 했으면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한 학습 코칭으로 1:1 맞춤형 교육을 하겠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두 번째 과제도 실행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학력격차가 크게 발생하는 교과목 수업에 2명의 교사를 배치하겠다는 것인데, 세부 과제에 있는 대로 예비교사 인력을 활용한다고 해도 예산과 인력을 제대로 확보할 가능성이 있을까? 아마도 전시성 사업으로 몇몇 학교 시범학교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나머지 대부분의 공약 과제들 역시 이와 유사한 비판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언급은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사실, 내가 문재인 대통령 교육 공약을 보면서 정말 답답하고 우려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이런 문제들이 아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철학의 부재 또는 빈곤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 변화에 대한 둔감성이다.
  우선, 철학의 문제를 보자. 공약 전체를 수없이 읽어보아도 다음 정부가 교육을 어떤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억지로 한 가지를 찾아본다면 아마도 저소득층 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육기회를 늘리거나 지원을 확대한다는, 이른바 교육복지 강화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선거 과정이나 평소의 문재인 대통령 행보와도 일관성이 있는 가치다. 특히 사회적 양극화나 빈부격차 확대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던 정책이고 두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기에 국민적 요구도 높은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확대로 일관하고 있음을 보면서 선뜻 동의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예산 지원의 현실적 한계도 문제지만, 교육적 약자들이 원하는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약이 11번의 ‘교육의 공정성을 높이고 교육의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주된 내용을 보면, 학력과 학벌 차별 철폐(블라인드 인재 채용), 대입에서 사회적 배려대상자 지원 확대, 로스쿨 제도 공정성 강화, 특수교육 대상자 지원 확대, 탈북 및 다문화학생 지원 확대 등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교육기회를 확대해 주면 사회적 평등이 진전된다는 가설은 이미 60년대에 거짓임이 드러난 자유주의적 신화이다. 교육 평등과 관련된 세계 각국의 연구들은 기회 확대와 평등이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부분의 백미는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이라는 표현이다. 교육의 계층 사다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단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전제하고 교육 경쟁을 통해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을 한 단계씩 위로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교육사회학자들이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대표적인 기제라고 지적한 바로 그 사다리를 복원시키겠다니! 물론 양극화의 심화로 그러한 사다리조차 끊어졌다는 세간의 탄식을 염두에 둔 공약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제대로 된 인식과 철학이라면 학력 제도 자체의 철폐나 대안적인 학력 인정과 같이 사다리 복원이 아닌 방안들을 모색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E. 라이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라이머, 김석원 역, 1979). 그는 성공적인 사다리 오르기가 사회적 로또(social lottery)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일갈하였었다.
 
“한 사람이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사다리를 내려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 사람이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수천 사람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야 가능하다. 기회 평등이라는 신화의 이면에는 강요된 불평등 현실이 존재한다.”(64)
 
  시대 변화의 둔감성은 10번 공약의 ‘4차 산업혁명시대 대비’의 빈약한 내용에서도 나타나지만, 교육 공약의 표제인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얼핏 보면 그게 왜 문제인가 싶을 수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 나서서 저소득층과 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하지만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근대 산업사회 패러다임이며, 흘러간 명제가 된 지 오래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간 또는 시장 요소가 교육에 들어오는 것을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했지만, 역으로 보면 국가주의의 확대는 전체주의로 직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지식기반사회 혹은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진전될수록 국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라는 명제는 복지와 평등을 진전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지만, 그 반대편은 획일성과 경직성, 그리고 사회적 무기력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필요 없다거나 줄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검토와 지혜로운 절충이 필요하리라 본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세심한 지원과 조정을 전제로 한 민간 부문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지금과 같은 거대 관료조직을 통한 교육체제 운영이 아니라 단위학교가 인사, 교육과정, 재정에 관한 기본적인 자율권을 가지고 미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 경우 현재의 행정 업무와 인력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현재의 교육청 조직과 인력은 일선 학교에 불필요한 업무를 양산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교장 승진의 지름길을 제공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교육을 훨씬 빠르고 좋게 만들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왜 새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효과도 불확실한 길을 가려고 하는가? 정녕 한국교육의 진정한 미래상은 다가설 수 없는 신기루인가?
 
 
맺음말
 
  답답한 마음에서 좀 지나친 독설을 늘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쨌든 적폐청산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지지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물론 교육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간곡하게 권유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가 생기발랄한 배움의 장소로 탈바꿈될 수 있도록 학교체제를 혁신하라. 학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주 요인은 획일적인 국가교육과정, 층층시하의 관료제도, 그리고 성적 경쟁이다. 먼저 아이들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국가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라.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핵심 역량이나 지식의 수준을 정해놓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나 수단은 전적으로 학생이나 교사에게 맡겨라. 이것은 교육부에 있던 업무나 권한을 교육청으로 이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가르침 중심의 교육을 학생의 자발적인 학습으로 대체하는 인식의 혁명이 선행되어야 하고, 국영수과사 필수과목 대신 각종 프로젝트나 선택과목 중심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모든 학교 운영을 단위학교 중심으로 개편하라. 단위학교에 최대한 인사, 재정, 교육과정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교육행정 조직은 단위학교들이 요구하는 행·재정적 지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전문적 지원은 유럽 국가들처럼 교육행정 조직과는 별개로 장학조직을 통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일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라. 이를 통해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 대신 공부 자체가 재미있어 하는 공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미 국내외의 다양한 대안학교들에서 마련된 수많은 모범적인 사례들이 존재한다.
  둘째,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게 교원 제도를 개편하라. 현행 교원제도는 산업화 시대와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만들어진 낡은 제도이다. 우선, 양성과정과 자격증 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재 교·사대에서 예비교사들은 주로 장차 자기가 가르칠 교과지식 위주로 배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미래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교과지식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나마 학교나 교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상황이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학교는 학교가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찾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양성대학의 교육과정이 전면 개편되어야 하고(기존 교수들의 과감한 교체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교사자격증 제도도 폐지되거나 달라져야 한다. 시험을 치러 임용되는 넌센스도 시급히 사라져야 하며, 국가가 뽑아 장돌뱅이 돌리듯 하는 전보제도도 폐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학습자의 권리를 완전 무시한 교사 편의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안은 학교별 임용이다. 북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학교운영위원회(또는 이사회)에서 교장을 공모하여 뽑고, 그 교장에게 교사 인사권을 부여한다. 교장이나 교사는 모두 학부모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계약제이다. 이렇게 되면 교직사회의 여러 비합리를 낳는 교장 승진제가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이런 개혁은 혁명적 상황에서도 추진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백척간두에 선 위기 국면이라고 보는 나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도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물론 이 일이 어떤 개인이나 권력의 힘으로 추진될 수는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유일한 길은 장기간의 대토론회를 통한 국민적 합의 생성이다. 나는 다른 어떤 글에서 5년 토론, 5년 대안 준비, 5년 시행과 정착이라는 ‘교육대개혁 15년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다. 너무나 많은 난제들을 안고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무리한 주문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만들어주기 위한 기존 교육체제의 과감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글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 실린 것을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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