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함께하는 생활지 -목격자가 없을 때
[연중기획] 함께하는 생활지 -목격자가 없을 때
  • 나성신 기자
  • 승인 2017.03.28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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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은 서울신화중 교사

3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어머님의 신고로 학교폭력으로 접수된 사안을 조사하느라 1학년 여학생을 상담하였다. 목소리도 작고 가는 하얀 피부를 가진 한 눈에 봐도 내성적인 성향의 ‘모범생’ 인상을 가진 아이였다. 체육시간에 @@이가 자신의 발을 고의로 밟고 지나가서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발톱이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으며 치료중이라고 말했다. 한 달여 전부터 @@이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자신을 쳐다보며 키득거리고 자신이 교실에 들어서면 하던 말을 멈추며 자신을 째려보곤 했다는 것이다. 피해학생 조사를 마치고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이와 상담을 하였다. 큰 키에 마른 체구, 얌전하면서도 목소리도 작은 여학생이었다. @@이는 발을 밟은 사실을 부인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였고 자신은 그 아이와 같이 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보통은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 자신의 행동은 인정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도드라지게 어필하는데 이번 사안은 폭력사실 자체를 부인할뿐더러 관련학생의 언행으로 미루어 모두 내성적이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난감했다. 목격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담임교사의 협조를 얻어 해당 학급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행하였지만 설문조사에서는 아무런 목격상황이나 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 많은 학생들이 체육교사의 지시 아래 서너 명 씩 달리기를 하였고 나머지 학생들은 달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달리기를 마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쉬고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발을 밟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의 할머니가 찾아오셔서 자신의 손녀가 식사도 못하고 두통과 복통에 잠도 잘 못 잔다고 항의하였고 아버님은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였다. 목격자는 없고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은 발톱이 빠질 정도로 피멍이 들어 치료중인데 가해로 지목된 학생은 부인하며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피해 학부모는 상황을 듣고 난 후에 더더욱 노여움이 커졌다. 자신의 딸이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해 학생과 부모가 반성하고 지도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누굴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는 것이냐며 거친 항의를 하였다.

일단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를 열었다. 피해학부모의 요청으로 피해 학생은 불참했으며 ‘가해학부모와 학폭위에서도 만나지 않겠다’ 하여 각각 대기실을 달리하고 피해부모의 의견 진술이 끝나고 그 학부모가 귀가한 후에 가해 학부모를 회의실로 입실하도록 하였다. 위원들에게 현재 벌어진 상황과 각자가 주장하는 폭력사실을 그대로 설명하였고 우선 가/피해 학생이 같은 반이라 보호조치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각각 치료 명목으로 출석인정 결석을 우선 부가하고 목격자나 증거가 없으므로 조치사항을 결정하기 위하여 한 달 후에 학폭위의 재개최를 결정하고 1차 학폭위를 마무리 지었다.

학교 근처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43kg의 여학생이 운동화 발로 상대 발을 한차례 밟아서 피멍이 들고 발톱이 빠질 수도 있는지를 물었다. 희박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당 학급의 창체 시간을 활용해 신고와 고자질의 차이, 학교폭력에 대한 이해 및 대처법에 대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가/피해 학생이 없는 상황이라 특히 신고의 중요성에 대하여 재차 강조하였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드디어 신고자가 나타났다. 피해학생의 절친이었다. “네가 목격했다고 말해줘”

피해를 주장했던 학생은 친구들과 수시로 가해 학생 험담을 하면서 째려보고 키득거리곤 했으며 친한 친구에게 가해학생이 발을 세게 밟는 것을 봤다고 담임 샘께 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차마 절친 요청대로 거짓말을 할 수도, 학생부에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피해학생을 상담하니 수업시간에 가해학생이 선생님들의 관심과 칭찬을 받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미웠다고, 그래서 그랬다고, 자신의 부모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며 울었다. 피멍이 든 발톱은 집에서 실수로 문턱에 심하게 부딪혀 그런 것이라 대답하였다.

그 학생의 어린 마음을 다독이며 공부는 경쟁이 아님을, 세상은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사는 곳임을 얘기했지만 차갑게 눌러오는 죄책감을 어쩔 수가 없었다. 교육을 바라보는 경쟁이라는 색안경을 벗는 그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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