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 5. 삶을 ‘리셋’하고 싶다는 아이
[기획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 5. 삶을 ‘리셋’하고 싶다는 아이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03.15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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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리 세그루패선고 교사

“선생님, 사람이 죽으면 천당과 지옥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기가 지옥 같아요.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에요. 죽는 거. 그래서 저는 죽고 싶어요. 정말로.”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아직 18살밖에 안된 아이가 ‘사는 게 지옥 같을까’ 싶었다.

 얼마나 자주 ‘자살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계획’ 중인데,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학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들려 준 ‘죽고 싶은 이유’와 달랐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고, 위험성이 느껴졌다. 이번호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고, 모범적이며,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혜정(가명)이의 ‘자살 생각’을 여러 선생님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서.

혜정이는 아들만 있는 집의 늦둥이다. 잘 웃고 다니고, 친구들과도 별 탈 없이 지낸다. 성적도 상위권이다. 손재주도 좋아서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으며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냥 보기엔 ‘무난한’ 학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뜻밖의 반전이 있었다.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혜정이는 자신이 혐오스럽다고 했다. ‘가식덩어리’라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우울지수’가 높게 나와, 상담실에서 부모님께 연락을 하자, 부모님은 화를 내셨다. 학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에, ‘창피하게’ 이런 말을 듣게 하냐면서.

그리고 ‘학교에서는 늘 웃고다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혜정이는 늘 웃고 다녔다고 한다. 가끔 아직도 우울하냐고 묻는 말에 ‘우울하지 않다’고 대답했고, ‘행복하냐’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실시한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는 솔직하게 답하지 않았다. 또 혼날테니까. 상담실에도 오지 않았다.

또 전화가 가면 혼날테니까. 그렇게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았다. 자신이 감정은 꼭꼭 숨긴 채.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가식적으로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모두 가식적으로 사는 것 같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위로하는 말, 좋다고 하는 말, 인정해주는 말 등이 모두 진짜가 아니라 ‘가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또 혐오스러워진다고 했다.

자신은 사는게 너무 재미가 없고, 행복하지 않으며,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옥같아서 끝내야 겠다는 말을 했다.

화가 나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환경에 오래 있게 되면 억울함이 생긴다. 슬픔과 화가 공존하는 상태다. 화는 당장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감정이며, 슬픔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둘은 모순적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의존적이 되어 주변에서 누군가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억울함의 이유를 살피고 해소,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가식적으로 사는 삶이 너무 싫고, 다른 사람도 다 가식적으로 사는 것 같아 믿음도 안가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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