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힉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4. 위생관리 안되는 아이
[기힉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4. 위생관리 안되는 아이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02.09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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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리 세그루패션고 교사

유난히 냄새가 나는 아이들이 있다. 적어도 한 반에 1~2명은 있다. 더운 날 밖에서 운동을 해서 나는 땀 냄새가 아니다. 머리를 안 감고, 잘 씻지 않고, 옷을 자주 빨아 입지 않아서 나는 냄새이다. 교복은 꼬질꼬질하고, 손은 거칠하며, 얼굴엔 각질이 피어올라 와 있다.

1평 남짓의 개인상담실 문을 닫자마자 풍기는 냄새로 인해 “어휴, 선생님이 갱년기인가. 왜 이렇게 덥다니. 문 좀 열고 하자”며 창문을 열어야만 상담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냄새 난다’는 말을 하자니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고, 말을 안 하고 넘어가자니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 좀 더 세련되게 아이가 직접 위생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번달에는 자기위생이 안 되는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저소득층이며, 왕따이고, 부모로부터 폭행 혹은 방치 등의 아동학대를 받는다. 또한 우울하다기보다 무기력과 패배의식이 몸에 배어있다. 그냥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는 중이다. 슬픈 사실은 이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의 복지비가 정말 쓰일 곳에 쓰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이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례 1 _ ‘더러운 냄새가 난다’며 유치원 때부터 왕따를 당한 민지

올해 본교에 입학한 민지(가명)는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는 매일 소주 3병 정도를 마시는 심각한 알콜릭(alcoholic)이고, 집안 살림은 어렸을 때부터 민지가 했다. 그 작은 손으로 살림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씻으라는 사람도, 씻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늘 지저분한 모습으로 어린이집에 갔다. 그때부터였다. 왕따가 시작된 것이. 자기 주변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민지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입 냄새도 심했고, 몸에서 나는 체취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감은 높았지만, 민지는 ‘진로계획’만큼은 똑 부러졌다. 늘 취해있는 아버지 옆에서 민지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이었고,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본교와 입학했다.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고,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도 없다고 했다. 나도 웹툰 좋아하니 기회가 되면 보여 달라고 하자 단칼에 싫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학교와 와 보니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아마 제 그림은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담전략 _ 머리부터 단정하게, 교복은 깔끔하게

3~4번의 만남이 이루어진 후, 헤어지면서 “민지야, 머리 안 답답해? 앞머리만 이렇게 다듬어도 훨씬 귀여울 것 같아”라는 말을 건넸다. 다음 상담시간에 민지는 앞머리를 눈썹 위로 자르고 왔다. 민지가 마음을 열었구나 싶어 이번엔 교복에 도전했다.

“빨래도 민지가 하니?”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교복 상의 안에 늘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민지는 이 옷 엄청 좋아하나봐?”물었더니, 입을 만한 반팔티는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세탁물이 많지도 않고 귀찮기도 해서 2주일에 한 번 정도 세탁기를 돌리며, 교복이랑 매일 입는 반팔티셔츠 역시 한 달에 1~2번 정도밖에는 빨지 않는다고 했다. 꽃에 향

기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특유의 체취가 있으며, 음식을 오래 두면 상하는 것처럼 매일 입는 옷은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어도 일주일 이상 되면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다른 빨래는 몰라도 교복이랑 매일 입는 반팔티셔츠만큼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 교사에게 부탁하여 양치하는 요령도 교육했다.

민지는 항상 혼자만 생활해서 친구 관계 맺는 것이 서툴렀다.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도 몰라 했다. 개인상담보다는 집단상담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방과후에 진행하는 집단상담에 민지를 포함시켰다. 3~4차례의 집단상담이 진행된 후, “민지가 웹툰을 잘 그리니까 집단상담에서 나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민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처음엔 자신의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던 민지는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사례 2 _ 학교 급식이 유일한 끼니인 지선이

올해 2학년인 지선(가명)이는 부모님과 한집에서 살 뿐이다. 어머니는 살림은 물론 아이들 양육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고, 방에서 잘 안 나오신다고 했다. 아버지는 법적으로 양육을 책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보호하지는 않는 듯 했다. 지선이는 늘 얼굴엔 각질이 가득하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기름져 있다.

교복엔 곰팡이 난 자국이 선명하고, 빨아 입기는 하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묵은 때가 찌들어 변색까지 되어 있다. 지선이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선이의 유일한 끼니는 학교 급식이었고, 집에 가면 그냥 누워서 스마트폰만 한다고 했다. 최근엔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이 집에서 나가라”며 내쫓겼다.

지선이는 지금까지 뭔가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왔다가 간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대답도 한두 박자 느리며, 논점에서 어긋나 있을 때가 많았다.

상담전략 _ ‘방임’이 의심된다면 아동보호센터와 연계

지선이의 경우 아동학대 중 ‘방임’이 의심되었다. 아동보호센터와 연계하여 가정방문을 했더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었다. 일단 아동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를 연결해줬고,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줬다. 민지와 마찬가지로 자기위생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지도와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사례 3 _ 작년과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 착실했던 세라

3학년이 된 세라(가명)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 대신 지적장애 오빠를 돌보는 학생이다. 물론 집안일도 도맡아서 한다. 부모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며 착실하게 취업준비를 하던 학생이다. 하지만 올해 세라는 작년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2학년 때까지는 깔끔했던 학생이었는데 복장이나 외모가 점점 지저분해져 갔다. 학업성적도 떨어졌고, 대화 도중 간간히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말을 했으며, ‘멍’하니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학급 친구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하소연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이상하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면 “몰라요. 생각이 안 나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상담전략 _ 갑자기 생활 모습이 변했다면 병원과 연계

몇 번의 설득 끝에 학부모 동의를 얻어 의료지원서비스를 받았다. 세라는 조현증(schizophrenia) 초기 증상이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하여 꾸준히 치료할 경우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세라는 현재 대인관계에서 조금 어려움을 느낄 뿐, 큰 문제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물론 학교관리자, 보건교사, 담임교사, 상담교사 이외에는 세라의 상태에 대해서 모른다. 혹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상태 악화 시 병원에서 입원 치료하기로 한다’는 학부모 서면 약속도 받아놓았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돕기

언젠가부터 내 책상엔 핸드크림이 2~3개씩 놓여있다. 보건실도 아닌데 캐릭터 밴드도 책상 서랍에 수북하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손이 거칠면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손톱을 물어뜯거나 쥐어뜯어 피가 맺어있으면 밴드를 붙여준다. “손은 또 다른 얼굴이야. 손이 예뻐야 자신감도 더 생긴단다” 하면서. 올해는 꼬리빗과 헤어밴드도 사다 놓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는 ‘머리스타일’부터 시작이니까.

간혹 담임교사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볼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냄새난다고 말하면 상처가 될까 봐서…. 말을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정답은 없다. 어떤 아이는 이야기를 해줘서 개선이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아이는 화를 내면서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는 ‘병’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부모의 ‘방임’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아이와 속사정 이야기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학생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

[사각형입니다.]

그다음의 대화는 아이들이 이끌어 줄 것이다. 민지처럼 “바쁜 게 아니라, 제가 빨아야 하는데 귀찮아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 빨아요”라는 답변을 할 수도 있고, 세라처럼 “로션을 발라본 적이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보호를 받지 못해 자기위생관리가 안 되는 아이들을 돕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쟤는 왜 저렇게 자기위생관리가 안 되지?”라는 질문을 따뜻한 관심으로 바꾸면 된다.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배웠어야 할 자기위생관리를 교사가 지금이라도 하나씩 알려주면 된다.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받은 치유자’, 교사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떤 학생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중심에는 늘 담임교사가 있다. 학교를 다니는 중 한번이라도 담임교사가 적절하게 도움을 주거나, 지지를 보낸 경우 아이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하지만 좌절을 경험한 아이는 말해봤자 소용없고, 모두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성장을 멈춘다.

심리학 용어에 ‘상처받은 치유자(wondedhealer)’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의 키론이 영원히 치유하지 못할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뛰어난 의술로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제자들을 키워낸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개념을 도입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은 ‘산다는 것 자체가 늘 상처와 함께하는 일’이라고 했다. 교사 역시 상처를 안고 다른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아닐까? 아이의 ‘성장’ 없는 교사의 ‘성공’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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