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3, 패드립 치는 아이들
[기획연재] 우리학교 상담실- 3, 패드립 치는 아이들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03.26 2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김미리 세그루패선고 교사

상담자도 사람인지라, 상담 도중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은 아이들을 만난다. 돌아나가는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깊은 심호흡으로 억누를 때도 있다. 내 인생 최고의 ‘강적’은 올해 만난 1학년 학생이다.

상담 도중 “상담교사라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입 닥쳐요. 여기서 나가라고요”라고 소리치는 학생이다. 3개월 정도를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교사들은 물론 선배들도 멀리서 이 학생이 나타나면 피해 다닐 정도이다.

도대체 이 아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견적’조차 나오지 않는다. 상담을 한다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학생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두렵다. 하지만 이 학생을 이대로 사회에 내보내면 9시 뉴스에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 두려웠다.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변화가 생겼다면 상담실에 비상벨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 대 맞을까 봐서….

7살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듯 보이는 아이

처음 상담실에 들어올 때 이 학생은 어깨는 좌우로 삐딱하게, 치마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위아래로 훑어 내리면서 건들건들 걸어 들어왔다.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 이 학교 선생들은 다 쓰레기 같다니까. 왜 남의 핸드폰을 뺏고 지랄이야”라며 욕부터 내뱉었다. 그리고는 어서 인성지도부에 가서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응? 내가? 왜?”라고 반문하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핸드폰을 뺏겼어요. 그래서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잖아. 상담샘은 애들을 도와줘야 하는 거니까, 샘이 나를 도와줘.”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 반말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심부름해주는 거잖아’라며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럼 내 핸드폰 어떡하냐고. 내 핸드폰 내놓으라고”를 외치며 상담실 바닥에 퍼져 앉아 발을 굴렀다. 기가 막혔다. 마치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7살 어린아이 같았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떼를 부리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보호자가 지쳐서 항복할 때까지 떼를 쓴다.

협상하며 보호자를 제압하려 한다. 점점 강도가 심해져 육체적・언어적 폭력을 가하면서 자기 뜻대로 상황을 이끌어 간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해를 해서라도 항복을 받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식으로, 제풀에 꺾이도록.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눈치를 살피던 학생은 툭툭 털고 일어나 교실로 가버렸다.

두 번째 만남은 더 기가 막혔다. 수업시간에 교사에게 대들다가 상담실로 끌려온 학생을 개인상담실에 잠시 대기하게 하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초지종을 듣던 중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열어봤더니, 상담실 사물함을 뒤져서 과자를 꺼내먹고 있었다. “뭐하니?”하고 묻자, 또다시 상담실 바닥에 퍼져 앉아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기괴한 소리까지 내면서.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저 눈물 자국 많이 났어요?”라고 물으며 자리에 앉아 화장을 고쳤다.

세 번째는 체육복을 입고 다니다가 인성지도부에 걸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난 후였다. 여전히 흥분상태에서 씩씩거리며 나에게 황당한 한마디를 했다. “담배 피우다 걸린 아이와 체육복 입고 걸린 아이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학교가 어디 있어요? 아니 어떻게 둘 다에게 벌점을 줄 수가 있는 거죠?” 체육복을 입은 거나 담배를 피운 거나 둘 다 교칙위반인 것은 같은 거 아니냐는 설명에 이렇게 외쳤다. “상담교사라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말할 거면 입 닥쳐요. 여기서 나가라고요.”

아버지를 감방에 처넣으라는 아이

상담공부를 할 때 예시자료로나 들어봤지, 실제로 이런 학생을 만나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떤 상담전략을 짜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담임교사의 협조를 얻어 학생이 흥분상태가 아닐 때 상담실에서 만났다. 상담을 통해 만난 학생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자기 부모님이라고 했다.

아버지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상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자신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와 책임은 부모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왜 자기만 병원에 가라고 하고, 상담을 받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때리는 아버지와 그걸 보고만 있는 어머니와 오빠,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니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에 있던 색연필을 집어 던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폭발되고 점점 흥분이 되는 학생이었다.

혹시나 싶어 병원 치료 경력을 물었다. 또다시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나는 문제가 없다고. 문제는 아버지라니까. 그 사람이 나를 때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병원엔 그 사람이 가야 하는데 왜 자꾸 나보고 가라고 하느냐”며 난리를 피웠다.

부모 상담 전 검사를 통한 객관적 자료 확보

부모 상담을 진행하기 전에 간단한 검사를 실시해보기로 했다. 이 학생은 상담이 아닌 병원 치료가 필요했고,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자료 확보가 시급했다. CASS 검사 결과 ADHD 및 품행장애 경향성을 보였다. 부모님 역시 강제입원까지 생각할 정도로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계셨다. 하도 악을 쓰며 대들어서 아버지가 손찌검을 했고, 화가 나면 엄마를 밀치고 때리는 통에 오빠가 자주 혼을 내서 모든 가족구성원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요즘엔 싸우고 나면 툭하면 집을 나가서 대학로 ‘쉼터’에서 잠을 자는데, 이곳 상담사들과도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내성적이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며 별문제가 없었는데, 2학년 때 교사에게 대드는 모습에 아이들이 환호를 해주면서 180도 돌변했다고 한다. 교사에게 심하게 대들면 대들수록 친구들은 웃으며 좋아해 줬고, 그 행동이 더 심해져 가서 나중엔 선생님들이 그냥 피했을 정도라고 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학생을 강제로라도 병원에 데리고 가겠노라고 약속하셨다.

병원 치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부모님은 병원 치료를 꺼리신다. 심지어 화를 내시는 부모님들도 계시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하지만 상담으로 안 되는 상황이 있다. 우울, 자살고위험군, 불안증, ADHD, 품행문제, 인지왜곡 등은 약물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병원 치료를 권할 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병원 치료가 ○○이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지금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이에게 정말 위험한 일이 닥칠 수도 있으니까요. 설마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큰일이잖아요. 독감에 걸리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놓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병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보통 큰 결심을 하지 않고는 힘들죠.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회적인 인식도 그렇고. 하지만 검사에서도, ○○이와 상담한 내용에서도 분명 조금 의심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하게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찜찜한 상태로 있다가 ○○이에게 정말 위험한 일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이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머님, 아버님께서 큰 용기를 한 번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교직원 연수를 통해 모두 같은 지도방법 공유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 학생과 관계 맺음을 시작하면서 ‘미운 7살을 다시 키우는 심정’으로 임하기로 했다. 부모 상담을 다시 진행하면서 학생의 ‘낚시질’에 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학생이 아무리 화를 돋울지라도 폭력・폭언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면 학생은 자신의 잘못은 잊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돌리며 본인은 ‘피해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아버지가 학생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원인제공’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담임교사에게도, 교사연수시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학생이 감정적으로 대할 때, 성숙한 어른인 교사는 절대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 ‘정신줄’을 놓지 말고 끝까지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학생이 흥분해서 화를 돋운다고 교사까지 흥분하면 학생들은 이내 자신의 잘못은 잊고 교사의 행동만 꼬투리 잡는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차별대우한다. 나만 미워한다”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흥분한다. 친구들에게도,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도 똑같이 전달한다. 결국 교사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자신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정당성을 확보한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하게 되고, 점점 과감해진다. 교실 안에서의 주도권을 이 학생이 갖게 되는 순간, 학생들을 통솔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간다. 학생이 막말을 하거나, 품행 문제를 일으킬 때 교사들이 흔히 하는 나쁜 예를 살펴보자.

나쁜 예

학생들의 반응

? 어디 선생님한테 그따위 말버릇을 하는 거야?

! 어디 버릇없이! 밖으로 나가 있어!

권위적으로 무조건 찍어 누른다고 생각하며 합리화한다.

너는 부모님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니?

‘패드립’이라며 합리화한다.

 

그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일단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묻는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대들면, 그 감정은 제쳐놓고 ‘내용’만 되묻는다. “아, 이런 일 때문에 화가 난 거구나”라고. 학생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화를 시작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논리적 허점을 치고 들어간다. “아, 그랬구나. 그런데 아까 그 일은 왜 그렇게 된 거지? 넌 이렇게 행동했다며?” 중요한 것은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발생한 것이지 타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려줘야 한다. 물론 ‘다 네 잘못이야. 네가 잘했으면 이런 일 안 벌어지잖니?’라는 식의 구체적이지 못한 말은 위험하다. 콕 짚어서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쉬운 지도방법은 ‘외면’이다

이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기를, 학교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세상에 가장 쉬운 지도방법은 외면이다. 관심을 갖고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힘들어진다. 학생의 성난 가시가 나를 후벼 파고들어 상처가 나고, 진이 빠진다. 상담 효과도 별로 없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 사실 난감하다. 그래서 이 방법 저 방법 닥치는 대로 사용해본다. ‘그러다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감기에 걸렸을 때 한 가지 약만 먹지 않는다. 의사도 한 가지 약만 처방해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A 감기약이 잘 들었는데, 남편에게는 안 들을 수도 있다. 작년에는 잘 들었던 약이 올해는 안 들을 수도 있다. 상담방법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학생에게 잘 적용되었던 상담방법이 저 학생에게는 해당 사항 없을 수도 있고, 작년에 실패했던 상담방법이 올해는 성공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누구에게 맞을지 알지 못한다. 또한 당장 효과가 나타날지 몇 년 후에 나타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지금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 해보는 수밖에. 오늘도 이 학생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가슴을 졸인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